스마트폰 보조기기 '리보2'
일본 교육업체와 정식 계약 눈앞
코이카 파트너사로 선정돼
콜럼비아 '점자사전' 개발 진행도
이 목표를 달성해보겠다고 오랜 시간 제품 개발에 매진해왔다. 어떻게 하면 시각 장애인이 지금보다 더 스마트폰을 편리하게 쓸 수 있을까.
점자를 아예 모르는 시각 장애인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점자를 익힐 수 있는 사전을 개발하면 어떨까. 한글 점자인 훈맹정음이 창시된 도시, 인천에 기반을 둔 공학자는 지난 7년을 이 일에 매달려왔고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안 대표의 점자 사전 아이디어를 채택했다. 이 사업을 위해 안 대표가 설립한 (주)브레일리스트는 개발도상국의 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CTS(Creative Technology Solution) 프로그램 파트너사로 선정됐다.
3억원을 지원받아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사전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스마트폰 보조 기기로 기존 제품보다 기능이 보강돼 지난해 나온 리보(RIVO)2의 경우 일본의 한 보조 공학 기기 교육 업체가 100대를 선주문, 정식 계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안 대표를 27일과 지난 13일 두 차례 송도국제도시 글로벌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만났다.
인터뷰에는 시각 장애인으로 지난해 모비언스, 브레일리스트에 합류한 정유라(39) 이사가 함께 했다.
정 이사는 "대부분 사람은 시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저희는 시각의 정보를 못 받아들이니까 좀더 나은 기기가 있어야 더 많은 정보를 소화할 수 있다"며 "IT 기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안 대표는 "검증을 안 하면, 엔지니어는 오류에 빠진다. 정말 사용자들이 어떻게 쓰는지, 개발자는 그것을 모른다. 그런 노하우를 제게 알려주는 일을 정 이사님이 담당하고 있다"고 했다.
Q : 현재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코이카 지원을 받아 개발 중인 점자 사전은 어떻게 시작됐고 왜 필요한 일인가요.
A : 시각 장애인의 90% 이상이 점자를 모릅니다. 점맹률이 미국 93%, 한국 95%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장애인 문맹률이 10%면 난리 났겠죠.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점자 사전 기기란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점자 학습 익힘 교과서나 규정집이 있지만 누군가가 옆에서 알려줘야 합니다.
점자를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은 혼자서 점자를 익힐 수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다른 교육자나 기타 도움 없이 혼자 기기만 있으면 집안에서 점자 학습이 가능해야 합니다.
코이카에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사전 개발' 과제를 제안했고, 지난해 11월 선정됐습니다.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은 120만명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5배가량입니다.
우선 프로토타입(prototype·시제품) 100대를 만들어 콜럼비아 시각 장애인 교사·학생 등을 상대로 적용해보고, 올해 9~10월쯤 제품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스페인어권은 시작입니다. '세상의 모든 점자를 다 넣는다'는 것이 브레일리스트의 목표입니다.
* 브레일리스트(Braillist)는 점자 번역자를 뜻한다. 기계적 직역이 아닌 의역이 가능한 숙련가를 브레일리스트로 부른다.
Q : 시각 장애인을 위한 스마트폰 보조 기기 리보(RIVO), 왜 특별합니까.
A : 2011년 미국 보조공학 전시회인 CSUN(California State University at Northridge)에 다른 제품을 전시하러 간 적이 있어요. 지체 장애인을 위한 키보드를 내놓았는데 정작 그분들은 관심이 없고, 시각 장애인분들만 방문하시더라구요.
배낭에서 키보드를 꺼내 애플 스마트폰 쓰는 방법을 보여주시면서 '불편하다', '편리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때부터 시각 장애인 보조 기기 개발을 시작했어요.
* 리보는 시각 장애인이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스마트폰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조 기기다. 보이스 오버 탐색 명령이 가능할 뿐 아니라 텔레뱅킹, 문자 입력·편집 등이 가능하다.
안 대표는 인천에서 초·중·고교를 나와 카이스트 학부 과정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부전공이 컴퓨터공학이었는데 '재미난 수학'으로 생각하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포항공대에서 컴퓨터공학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박사 2년차 때 우연히 알게 된 시스템공학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일하면서 개발자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외환위기 때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지만 '돈 버는 일'에 치여 개발자로서 역량을 발휘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3년 모비언스를 창업하면서 공학자로서 도전을 본격화했다.
창업 초기 그의 관심은 '세상의 모든 키보드 표준'을 만드는 데 있었다. 이른바 '모비언스 쿼티(querty·컴퓨터 자판 배열)'라는 원대한 꿈을 꾸며 5~6년간 정보 통신 국제 표준화 기구를 쫓아다녔지만 실패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품 개발을 지속했다.
안 대표는 정 이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품 개발에 실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리보2에서 음성 기능을 추가한 것도 정 이사의 조언 때문이었다.
"소리나는 키보드가 세상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니까 시각 장애인에겐 소리가 필요하겠더라구요. 어떤 기능을 하나 넣고 뺄 때 저는 '개발 비용'을 생각했는데, 시각 장애인 입장에서 무조건 소리가 나야 했어요. 엘이디 깜박이는 것은 전혀 도움이 안 되구요."
모비언스는 지난 21~23일 미국에서 열린 CSUN에 리보를 전시했다. 시각 장애인 등 방문객들의 호응이 컸다. 시각 장애인 가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도 모비언스 부스에 들러 리보를 시연하기도 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필요한 IT 기술을 소개하는 팟캐스트 '나폰수'(나도 폰고수다)는 최근 리보를 다뤘다.
이 방송을 들은 한 맹인 교사는 안 대표에게 문자를 보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기능과 완성도 높은 리보가 개발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정 이사는 "시각 장애인이 원하는 어려움을 모두 간파해 제품에 녹여내고 있다"며 "모든 것을 터치로 해결하는 시대, 시각 장애인을 위한 보조 기기는 장애인뿐 아니라 고령자들에게도 보편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유용한 기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시각 장애인 점맹률을 낮추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면서 '온 세상을 위한 점자 기기'를 개발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글/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1967년 경북 영주 출생
▲인천 서화초, 선인중, 선인고 졸업
▲카이스트 수학과 졸업, 컴퓨터공학과 석·박사
▲1993~1999년 시스템공학연구소(SERI·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
▲2003년 (주)모비언스 대표
▲2012년 리보(RIVO)1 개발
▲2017년 리보(RIVO)2 개발
▲2017년 (주)브레일리스트 설립, 점자 사전 개발 착수
▲2018년 리보(RIVO)2,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보조공학기기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