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 순간마다 고개 숙였던 金
숙적 崔 상대 7.2이닝 2실점 승리
기세 오른 삼성, 그 해 '통합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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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6일과 7일에는 부산에서, 그리고 하루 건너 9일부터 12일까지는 대구에서 선두 롯데와 2위 삼성의 5연전이 치러져야 했다.

후기리그 일정의 절반을 막 넘어서던 그 시점에서 롯데와 삼성의 승차는 4.5였고, 삼성과 3위 해태의 승차는 2였다.

롯데로서는 2승만 건져도 승차 3.5를 유지하며 선두자리를 굳힐 수 있는 기회였고, 삼성으로서는 더 이상의 격차를 허용하면 2위 자리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위기였다.

부산에서의 2연전은 말 그대로 탐색전이었다.

롯데는 1차전에 박동수를 세웠고 삼성은 진동한과 권영호로 맞섰다. 그리고 타격전 끝에 7대 5로 삼성이 승리했지만, 2차전에서도 롯데는 그 해 단 한 번도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이진우를 내세웠고 다시 삼성 황규봉에게 완봉패를 당하며 2연패로 몰리게 된다.

더 이상 밀릴 수 없었던 롯데에게는 '언제라도 필요한 1승을 만들어 줄' 구세주 최동원이 있었다. 8월 9일 대구에서 열린 3차전에 롯데가 최동원을 선발로 내보낸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삼성이 에이스 김시진을 그 경기에 등판시키는 맞불을 놓은 것이었다.

만약 그 5연전에서 4승 이상을 잡겠다는 욕심을 가졌다면, 삼성의 김영덕 감독은 그 경기를 버리는 대신 4,5차전에 김시진과 김일융을 투입하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었다. 잡을 경기와 버릴 경기를 뚜렷이 구분하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선두 팀을 상대로 한 5연승이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었고, 반대로 이미 전기리그를 우승한 삼성 입장에서는 져도 큰 타격이 없을 상황에서 최동원의 기를 꺾어보자는 모험을 걸어볼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흔들린 것은 김시진이었다.

동갑내기로서 고교시절부터 실업시절을 거치며 라이벌로 불렸지만 늘 결정적인 고비에서 패퇴하며 2인자로 낙인찍혔던 김시진으로서는 필생의 숙적을 상대로 또다시 썩 유쾌하지 않은 시험대에 오른 것이 마음을 흔들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롯데는 1회 초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볼넷을 골라 출루한 데 이어 내야안타로 간단히 한 점을 만들어냈다. 김시진의 슬라이더는 여전히 위력적이었지만 감각이 무뎌진 듯 제구에 애를 먹는 모습이었다. 반면 최동원은 별다른 위기 없이 5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하지만 김시진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했고, 2회부터는 칼날같은 제구력을 자랑하는 예전의 김시진으로 돌아가 있었다.

최동원은 주무기인 직구의 구속이 많이 떨어져있었고, 롯데는 5회에 배대웅의 중전안타로 동점을 만든 데 이어 6회에 들어서자마자 5안타를 집중시켜 4점을 뽑아내며 드디어 최동원을 쫓아낼 수 있었다.

김시진의 7.2이닝 5안타 2실점 호투에 힘입은 3번째 승리.

삼성은 그 날 경기를 통해 5연전에서 최대목표로 삼았던 3승을 이미 확보한 데다 최동원 마저 깨뜨리며 김시진과 타선의 기를 살려놓는 망외의 소득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두 경기에서 롯데가 그런 삼성의 기세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5연승. 결국 우려는 현실이 되었고 4.5경기차는 뒤집혀 삼성이 0.5경기차 선두로 올라서는 결과가 빚어졌다.

롯데는 그 충격의 5연패를 시작으로 13일 잠실에서 MBC에게, 다시 16일과 18일에는 광주에서 그 해 내내 쥐고 흔들었던 해태에게마저 반격을 당하며 연패행진을 8로 늘려놓은 채 선두싸움을 계속할 기력을 잃고 만다.

반면 삼성은 5연전이 끝난 뒤 한 호흡 쉬어 8월 25일부터 9월 17일까지 무려 13연승의 아찔한 질주를 벌이며 전기리그에 작성한 최다연승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최동원을 상대하며 부활한 에이스 김시진은 그 연승 기간 중 무려 6승을 추가하며 최동원과의 통산승수 경쟁에서도 한 발 앞서 나가게 된다.

삼성이 후기리그마저 석권하며 그 해 통합우승을 결정지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여 뒤였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