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소래포구 DB
활기차고 평화로운 소래포구의 지금을 있게 한 데에는 '수탈'과 '전쟁'이라는 아픔이 있었다. 실향민의 어업 활동을 시작으로 발전을 거듭한 소래포구는 주변에 아파트숲과 지하철이 연결돼 있어 '도심 속 포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드론을 활용해 찍었으며 소래포구 너머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황무지였던 소래포구,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 정착
항로 표지 시설·전봇대 직접 설치하며 터전으로 일궈
새우젓 등 1970년대부터 전국 입소문… 문학에도 등장
최근 어획량 감소 위기 '국가어항' 지정되며 희망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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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남동구 논현동 포구로. 소래포구와 어시장, 소래어촌계 등이 이 일대에 있다.

작은 어선이 있고, 배들이 정박하는 물양장 앞에는 갓 잡아온 수산물이 판매된다. 강원도나 충청도 어촌에 있을 법한 모습이 펼쳐지는 곳이다.

포구와 접한 곳에 있는 어시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소래포구와 어시장을 찾는 사람이 한 해에 2천만명이다. 새우젓과 꽃게를 사러, 회를 먹으러.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어시장은 상인과 손님의 흥정하는 목소리, 어시장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젖은 바닥에서 나는 발소리, 인천 어느 바다에서 잡혀 왔을 물고기들이 살아 푸덕거리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생동감을 자아낸다.

도심에서 어시장을 거쳐 바다 쪽으로 향하다 보면 작은 바다와 어선, 각종 어구가 나타난다. 많은 이가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어촌의 고즈넉함을 만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소래포구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소래포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있다. 인근엔 아파트를 짓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이 운행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소래포구가 '도심 속 포구'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이토록 활기차고 평화로운 소래포구의 시작엔 '수탈과 전쟁'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켜켜이 배어 있는 곳이 바로 소래포구다.

소래포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전해진다. 과거 이 일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수원에서 소래를 거쳐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수인선 철도를 건설했고, 건설 현장과 염전에서 일하는 일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나룻배를 정박한 게 소래포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어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어업이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실향민들이 소래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실향민 전규식(93), 박지화(90)씨 등 황해도에서 어업을 하던 이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고 나무로 만든 작은 범선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초. 실향민은 지금의 소래포구를 있게 한 뿌리라는 것이 소래 어민들의 이야기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소래어촌계장을 맡았던 전익수(65)씨는 '소래포구 1세대 어민'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이곳은 허허벌판에 작은 집 몇 채밖에 없는 작은 바닷가였다"고 말했다.

실향민 등으로 구성된 어민들은 1963년 소래어촌계를 설립했다. 당시 등록된 어선은 28척으로 인근 마을까지 소래어촌계에 포함됐다고 한다.

그때는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를 팔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일부는 포구 앞에서 판매했지만, 대부분은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수인선이나 경인전철을 이용해 서울과 인천항 등지로 가져가 팔았다.

소래어촌계원 조인권(62)씨는 "60년대 초반 처음 이곳에 왔는데,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며 "움막 같은 몇 채의 집과 갯벌, 작은 목선이 있었을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점차 마을이 커졌지만 1970년대까지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어민들은 꼬불꼬불한 물길 때문에 항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대로 된 항로표지시설도 없었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직접 전봇대를 세우고, 뱃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아 넣기도 했다. 전익수씨는 "당시 한국전력에서 전기선은 연결할 수 있지만 전봇대를 세우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민들과 주민들이 함께 전봇대를 세웠다"고 말했다.

연중기획 바다이야기 전신주 설치
1980년대까지 소래포구는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물길을 표시하는 시설이 없어 어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민들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이는 소래포구 발전의 바탕이 됐다. 사진은 어민들이 전신주를 세우고, 물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고 있는 모습. /전익수씨 제공

소래포구는 1970년대 이후 어민이 점점 늘었다. 어민들이 직접 잡은 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어업 활동을 하는 김남석(66)씨는 1978년 소래포구에서 어업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의 동력으로 갯벌 위에 배를 올려 놓고, 장화를 신고 걸어서 뭍으로 와야 했다"며 "70년대 후반부터 방송과 신문에 소래가 소개되면서 찾는 이들이 급격히 많아졌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1981년 6월8일 "서해 경기해안의 미항인 소래항. 이곳은 올해 들어 관광객이 부쩍 늘어 비좁은 포구는 원색의 인파로 흥청거린다"며 "소래항은 싱싱한 해물이 많이 나 각종 공해에 찌든 도시민들이 마음 놓고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수도권어항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래포구의 주 어종은 '새우젓'이다. 아직도 소래 새우젓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은 냉장시설이 잘 돼 있지만 1970~1980년대 소래 새우젓의 주 보관 창고는 부평동굴이었다. 지금은 전국적인 관광지가 된 '광명동굴'도 소래포구 새우젓의 보관 장소였다.

김남석씨는 "당시 냉장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새우젓 대부분을 부평과 광명에 있는 동굴에 보관했다. 지금도 부평동굴을 냉장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며 "1980년대엔 250㎏짜리 새우젓 수천 통을 동굴에 저장했다"고 말했다.

소래포구 새우젓은 문학작품에도 종종 등장한다.

시인 정세훈(인천민예총 이사장)은 '소래포구'라는 제목의 시에서 '휘몰아치던 서해 바닷 바람은 / 어머니 품안에 찾아들 듯 고요히 안겨오고 / 새우젓배들 너울너울 바람 타고와 / 끝없는 그리움처럼 줄 이어 새벽을 열었겠지'라고 했다.

현재 소래어촌계에 등록된 어선은 256척이다. 2008년에 347척까지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있다. 소래포구 어민 절반 이하는 다른 지역에서 어업을 하다가 소래로 옮겨온 이들이다.

연중기획 소래포구 83년 자료사진
1983년 소래포구 모습. 1980년대 초 소래포구에는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를 갯벌 위에 세워 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소래역사관 제공

시흥, 안산, 인천 만석·화수부두 등지에서 소래로 왔다. 소래 어민이 늘어난 것은 개발사업 영향이 컸다.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시흥의 어민들이 소래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1974년 인천항 갑문이 준공되면서 만석·화수부두의 소형 어선들이 소래로 왔다. 전라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온 이들도 있다.

소래 어시장은 지속적으로 확장됐지만 소래 어민은 줄어드는 추세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바다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화방조제 건설,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송도국제도시 및 인천 신항 건설 등이 소래 어민들의 조업에 영향을 미쳤다.

고철남(54) 소래어촌계장은 "지속적인 매립사업으로 조업할 수 있는 바다가 축소됐다. 단순히 면적이 줄어든 것뿐 아니라 어획량도 많이 감소했다"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갯벌 매립과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소래포구는 지난해 국가어항으로 지정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고철남 계장은 "소래포구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건 어민들의 어업 활동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어시장이 활성화된 것과 다르게 어업 시설은 굉장히 낙후됐다"며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만큼 소래의 낙후한 시설을 현대화하고, 어민들의 어업 활동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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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