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어' 朴, 부상·피로누적 침체
金, 데뷔 시즌 최다 18승 '신인왕'
성준·이상군도 15승·12승 맹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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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직전이었던 1981년, 한국야구의 메이저무대였던 고교야구 최고의 팀은 단연 선린상고였다.

선린상고의 쌍두마차 박노준과 김건우는 2학년생이던 1980년에 이미 한 해 선배들인 선동열(광주일고)과 이상군(천안북일고)을 때려 부수며 전국적인 선수로 자리잡고 있었다.

같은 해 경북고의 성준, 광주 진흥고의 김정수 등이 나름대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선린상고 듀오와는 이름값에서 한 단계의 격차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 중에서도 대중의 관심과 주목을 받은 것은 단연 박노준이었다.

박노준은 리틀야구 시절부터 나가는 대회마다 자신의 독무대로 만들었던 '천재'였다.

그리고 고교 2학년이던 1980년에는 이미 초고교급으로 불리던 대형투수 선동열과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맞대결해 타자로서는 홈런 포함 3안타 3타점을 뺏는가 하면 투수로서도 5이닝 2안타 1실점으로 광주일고 강타선을 잠재우는 KO승을 거두기도 한 일인자였다.

게다가 날카로운 콧날과 턱선에 눈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눌러썼던 모자와 헬멧이 풍기던 과묵한 카리스마가 '독일병정'이라는 멋진 별명을 얻게 했다.

각자의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 위해 반드시 박노준을 쓰러뜨려야 했던 성준뿐만 아니라, 늘 뒤지지 않은 활약으로 함께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도 늘 초점 흐린 배경으로만 남겨지던 김건우도 마찬가지였다.

박노준 하나만을 떠올리며 절치부심했던 성준은 그 해 경북고에 전국대회 3관왕의 영광을 안길 수 있었고, 뒤늦게 투수훈련을 시작한 김건우는 그 해 7월 미국에서 열린 제1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해 끝내 무관의 제왕으로 전락한 선린상고는 불운의 절정이었던 1981년 8월26일, 그 모든 영광들을 한 편의 비극에 쓸려 보내고 말았다.

그날 봉황기 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홈 슬라이딩을 하던 박노준의 스파이크가 덜 마른 그라운드에 박히면서 발목이 부러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미 팔꿈치에서 뼛조각이 떨어져나간 상태로 전날 완투하는 무리를 감수했던 김건우는 다시 마운드에 올라 투혼을 펼쳤고, 성준이 이끌던 경북고는 '박노준 없는 선린상고에게마저 밀리는 대참극'을 피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결국 역전에 성공하면서 우승컵과 최우수선수 트로피를 손에 쥔 경북고의 성준은 '박노준을 꺾겠다는 일념으로 땀흘려왔다'고 비장한 소감을 남겼고, 이튿날 우승컵을 들고 박노준의 병실을 찾아 우정의 악수를 건네는 풋풋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1981년의 고교야구세대들이 프로무대로 진입한 것이 바로 1986년이었다.

그 해 대학을 졸업한 박노준, 김건우, 성준, 김정수가 각각 OB, MBC, 삼성,해태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 한 발 뒤에 늘어서있던 김태원, 차동철, 한희민 역시 MBC, 해태, 빙그레 유니폼을 입었다.

게다가 한 해 전에 입단한 소속팀 빙그레가 그제서야 1군 무대에 진입하면서 사실상 함께 데뷔하게 된 이상군이 있었고, 상무를 거치느라 두 해를 거른 윤학길도 있었다.

물론 '최대어'는 박노준이었다. 그 박노준을 잡기 위해 서울 팀 MBC와 OB가 신경전과 협상을 벌인 끝에도 합의를 보지 못하면서 처음으로 동전던지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시즌이 시작되자 예상을 완전히 깨는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 누적된 무리와 부상, 그리고 프로입단 후에도 투수와 타자를 놓고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던 여파로 박노준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기나긴 침체의 시간을 시작해야 했던 것.

반면 늘 일찌감치 타자로 방향을 잡았다가 해외전지훈련장에서 준비해 간 배트를 모두 부러뜨리는 바람에 '그냥 놀 수는 없어서' 투구연습을 하다가 코치의 눈에 띈 김건우는 역대 데뷔시즌 최다승인 18승을 기록하며 당당히 신인왕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 김건우와 고교시절에는 숙적으로, 대학시절에는 절친한 동반자로 맺어졌던 성준이 15승으로 뒤를 이었고, 이상군이 승수는 12에 불과했지만 혼자 243.1이닝을 던지며 3연속 완봉승을 기록하는 등 꼴찌팀 빙그레의 대들보 노릇을 해 찬사를 받았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