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안]광주신촌리 봉선화마을](https://wimg.kyeongin.com/news/legacy/file/201805/2018050701000464700021321.jpg)
이종갑씨, 10년전부터 봉선화 나눔
마을 곳곳 씨앗 뿌려 경관 탈바꿈
한길수 회장·한광수 이장도 거들어
1500m 꽃구경길 주민 한마음 조성

그는 집앞 화단이며, 마을 공터며 식물이 뿌리 내릴 수 있는 곳이면 모두다 채울 기세로 '봉선화(봉숭아꽃)'를 심었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마뜩잖게 바라봤다.
"많고 많은 꽃 중에 왜 봉숭아꽃이냐", 어떤 이는 "콩이라도 심으면 열매라도 거두지. 먹지도 못할 걸 왜 이리 심는거냐"고 말했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한두 해 하다 말겠지'.
하지만 해는 거듭됐고, 한결같은 그의 봉선화 사랑에 사람들도 물들기 시작했다. 봉숭아꽃이 피면 마을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된 듯 손톱에 빨간 봉숭아물을 들였고, 봉선화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봉선화 꽃길까지 조성, '봉선화 마을'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광주시 곤지암읍 신촌리에는 매년 6~7월이면 한폭의 동화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예전엔 집집마다 화단에서 흔히 보던 꽃이었지만 언제부턴가 보기 힘들어진 꽃 '봉선화'가 마을 입구부터 마을 길을 따라 색색의 장관을 연출한다.

만당(滿堂) 이종갑(65) 선생이 6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을 때만 하더라도 신촌리는 흔히들 생각하는 농촌 풍경과는 차이가 있었다. 주변에 물류창고며 제조공장이 많다 보니 농촌이라곤 하지만 삭막함이 감돌았다.
그는 이곳에 봉선화를 심음으로써 소소하지만 생기 넘기는 행복을 전했다. 왜 수많은 꽃중 봉선화였을까.
"그리움에 손끝을 물들이던 민족의 혼과 정이 깃든 우리 꽃이 봉선화다. 일제 땐 홍난파의 '울 밑에 선 봉선화' 노래가 금지곡으로 탄압받았고, 만주 벌판에 독립운동가들이 고국을 그리워하며 애국가를 대신해 불렀던 것이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꽃 '봉선화'"란 그는 "삼천리 곳곳을 봉선화로 물들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래서 10년 전부터 봉선화 씨앗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주변 이웃은 물론 전국 단위의 꽃씨나눔을 하고 있다. 봉선화를 심겠다 하면 전국 어디든 씨앗을 보낸다.
지난해부터는 국회에도 씨앗나눔을 진행하고 있다. 국회 생생텃밭에서 정세균 국회의장도 씨앗나눔에 동참한 바 있으며 올해도 국회에 전해졌다.
사실 만당 선생은 대장암 환자다. 31번의 항암치료를 받았으며, 몸엔 호스를 달고 다녀할 만큼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 조금만 일해도 쉽게 지치고 체력에 한계가 온다.

그럼에도 그가 봉선화에 대한 열정을 이어올 수 있었던 데는 마을주민들이 함께였기에 가능했다.
지난 2일 안개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새벽 6시의 이른 아침임에도 마을노인회원 및 주민 등 30여명은 귀찮다는 말 한마디 없이 마을 안길에 모였다.
마을회관에서 마을입구까지 1천500여m의 봉선화길을 만들려는 것. 불과 몇년전까지만 해도 상상할수 없었던 일이지만 마을의 어른으로 언제나 솔선수범하며 중심이 돼주는 한길수(72) 노인회장과 무슨 일이든 뚝심과 열의를 갖고 추진해내는 한광수(59) 이장 덕에 마을은 하나가 됐다.
한 회장을 비롯해 마을사람들은 말한다. "아프지말고 오래 삽시다. 예쁜꽃 함께 가꾸고 봉선화가 만개할 때면 작은 축제라도 벌여 모두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