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노송지대9
노송지대 옛길이 폐쇄되자 인근에 건물이 들어섰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수원시 제공

정조 능행차길에 적송심어 조성… 이후 도기념물·보전지역 지정돼
"문화재보호구역 규제 풀어주겠다" 토지주 돈 받고 도의원에 뇌물
구청장 출신 주도 일대 비석도 제거 2009년 도심의위 신규건축 완화
주변 난개발에 새 길 뚫리며 역사문화적 가치 '옛길' 폐쇄·방치돼
관련자 "약속한 대가 달라" 땅주인과 소송 벌이며 사건 전모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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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능행차 옛길이 폐쇄됐다.

뒤주에 갇혀 여드레 만에 숨진 아버지를 기리며 닦은 효(孝)의 길이 끊겼다.

대신 옛길에서 스무 발자국 떨어진 곳에 새길이 났다. 길을 내는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고 향토유물인 공적비는 화성 창룡문 앞 나대지로, 수원문화원 창고에 처박혔다.

뒤늦게 박물관에 옮겨졌으나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수원 노송지대 쓰레기 방치3
수원시 파장동 노송지대 옛길이 폐쇄, 새로운 길이 조성되면서 그 옆으로 중고자동차 관련 시설이 들어서자 인근에 관련 쓰레기가 방치되고 있는 모습.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수원시 제공

#기념물 19호 노송지대 현상변경, 잘못 꿴 첫 단추


수원 장안구 파장동(이목동)의 노송지대(경기도지방기념물 제19호) 일대 개발행위는 금지돼 있었다.

지난 2009년 3월 경기도문화재심의위원회는 노송지대 2권역의 8개구역 중 1구역(왼편 12m)은 원형보존, 2구역은 개발행위 시 도 심의 절차를 밟도록 규정하고 3~8구역에 최고 높이 8m~47m(2층~15층 이하)의 평평한 슬래브 지붕 건축물을 지을 수 있도록 완화했다.

대가성 뇌물이 오간 탓이다. 당연직 문화재심의위원을 맡은 도의원과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 물망에 올랐던 브로커 L(66)씨가 '개발행위 허가'를 청탁한 토지주들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겼다.

검은 커넥션은 영원히 묻힐 뻔 했다. 토지주 K(80)씨와 L(76)씨가 정치권과 개발사업을 원하는 토지주 사이의 다리(브로커)를 놓아준 파장동 원주민 '집사' S씨를 변호사법 위반과 사기·공갈 혐의로 고소하면서 사건의 전말이 폭로됐다.

앞선 2008년 8월 집사 S씨는 K씨 등 토지주와 '이목동문화재보호구역 규제완화 달성'을 약속하며 10억원짜리 이행각서를 쓰고 5천만원을 선수금으로 받았다. 이후 노송지대 부근 토지 소유자 120여명과 규제완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직을 맡았다.

현상변경 심의가 통과된 뒤 S씨는 K씨 등에게 이행각서에 명시된 10억원 중 자신에게 지급하지 않은 돈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K씨 등은 S씨가 문화재보호구역 지정을 해제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는 이유로 돈을 지급하지 않고 검찰에 고소장을 냈다.

피고소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게 된 S씨는 수원지검에 브로커 L씨에게 자신이 100만원권 수표 260장을 건넸고, 이 돈의 일부가 도 문화재위원회 내 현상분과위원회 당연직 심의위원이었던 L(60) 전 도의원과 같은 당 소속 C(64) 전 도의원에게 전달됐다고 진술했다.

검찰 수사 결과 S씨의 진술은 사실로 드러났고, 검찰은 2014년 11월 28일 S씨를 불기소 처분하는 동시에 L 전 도의원과 C 전 도의원, 토지주 K·L씨, 브로커 L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알선수재), 뇌물공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1심 법원은 이들에게 1년~3년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5천만원~1억6천만원을 추징했다. 2016년 1월 대법원은 이 사건 원심을 확정했다.

법원은 "문화재심의위원으로 참여한 피고인이 현지조사를 나간 문화재 위원이 제시한 의견보다 토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며 "최종적으로 이 사건 토지 대부분이 포함된 구역이 신규건축 불허 지역에서 심의 없이 최고 높이 2층 이하의 건축물은 건축 가능한 지역으로 변경된 점을 고려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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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파장동 노송지대에서 열린 '정조능행차연시' 모습.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수원시 제공

#'왕의 길목' 노송지대 망가뜨리고 떳떳한 시 공무원


정조대왕은 즉위 13년차인 1789년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현륭원(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에 모신다. 이후 9년간 총 13차례 현륭원을 찾았다.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지대 고개에서 행차를 멈추고 아버지가 묻힌 화산(花山)을 바라보며 울었다. 지지대는 왕의 행차가 느릿느릿했다는 데서 유래한 고개 이름이다.

정조는 현륭원에서 팔달산, 노송지대와 서호를 잇는 능행차길에 조선 전래 적송(赤松)과 연꽃 등을 심는 등 조경에 힘썼다.

이때 심은 나무들은 일제 식민지시대를 지나며 배를 만든다거나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베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파장동 노송지대는 그나마 우량 소나무림으로 보존돼있어 1973년 도 지정기념물로 지정됐고, 2004년 도 소나무림 보전지역 50곳 중 1곳으로 선정됐다.

노송지대엔 비석도 즐비했다. 심겨진 소나무를 따라 역대 수원부사, 수원유수, 관찰사, 판관 등을 역임한 인물들의 선정비(백성을 어질게 다스린 벼슬아치를 표창하고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불망비(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어떤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 35기가 늘어서 있었다.

본래 이 비석들은 수원 중동사거리 등 각처에 흩어져 있다가 1970년대 노송지대로 모였다. 수원시는 향토 유적 제3호로 지정된 비석들을 문화재구역 완화 심의를 앞두고 노송지대에서 뽑아 수원문화원 지하 창고로 옮겼다.

전직 K시장 시절 혈연과 지연 등으로 얽혀 수원시를 '주물럭' 거렸던 구청장 출신 등 고위공직자 3명이 주도한다.

당시 비석 이동에 관여한 관계자들은 "공적비가 야지에 놓여 있어 훼손 우려가 있기 때문에 뽑은 것"이라고 입을 맞추고(?) 있지만 개발행위 허가를 위한 사전 조치였다는 의혹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후 수원시는 2009년 1월 장안구 파장동(이목동)의 노송지대(경기도지방기념물 제19호)에 대해 도 문화재심의위원회에 현상변경 허용기준안 심의를 신청했다.

노송지대가 문화재로 묶인 탓에 부동산을 활용하지 못하고 세금만 '꼬박' 내는 파장동 주민들과 토지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서란 명분이다.

당시 도 심의 신청안을 작성한 시 주무관은 "토지주들과 주민들이 문화재 주변에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기 때문에 규제 완화 심의안을 작성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조대왕 능행차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신규 건축이 불허돼 '길'로서의 기능만 했던 노송지대 옛길.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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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이제라도 폐쇄된 왕의 길, 살려야 한다."

노송지대 옛길은 2012년 경기문화재단이 발간한 '경기 남부 역사문화탐방로 개발 및 활용 연구'에서 정조 능행차길 18.7㎞로 지정됐다.

이 길은 당시 문헌에 조선 육로교통의 중심축인 삼남대로로 활용된 곳으로 명시돼있다. 삼남대로는 한양에서 경기도를 거쳐 충청 수영과 해남 땅끝마을, 통영으로 이어지는 도보길이다.

차량 통행을 막고 보행전용으로 탈바꿈한 옛길은 '노송로'라는 새 이름을 얻었지만, 찾는 이 없이 방치돼 있다. 문화계 전문가들은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주변 경관을 최대한 보호하는 '원형보존'의 원칙을 깼기 때문에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내 유적지 발굴 업무를 하는 경기문화재단의 한 연구원은 "임금의 거동길로 조성된 노송지대를 보존하겠다며 길을 막았지만, 길의 상징이 되는 나무를 이식하는 등의 가꾸기 사업이 전혀 되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노송지대는 그 길이 가진 역사성을 살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길이라는 원초적 기능도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희대 민족학연구소 남찬원 연구원도 "옛길은 유형이지만 무형유산의 성격도 띠는데, 과거 많이 이용한 길은 현재도 경제성이 높기 때문에 역사성을 보존하기보다 새로운 길로 덮였다"며 "길이 갖는 역사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 최근 트렌드이며 문화재 보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라고 설명했다.

한편 수원시는 노송지대 일부 토지를 매입해 녹지로 조성하고 소나무(후계목) 35주와 지피식물(토양을 덮어 풍해나 수해를 방지하는 식물) 34만 본을 심고 지난해 6월 시민에 개방했다.

시 관계자는 "시의 복원 노력이 뇌물 사건이 불거지면서 빛을 바래고 있어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2020년까지 노송 유전자 분석을 통한 후계목 증식으로 정조대왕의 소나무를 시 곳곳에 남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지영·배재흥·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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