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세기 중반~5세기 초반 굴식 돌방무덤
풍납토성 유물과 비슷한 토기 등 나와
이성산성 중심 춘궁동 일대 다시 주목
전략적 요충지 불구 관련 문헌 없지만
조선까지 '백제 왕성' 있었다고 보기도

사학계는 전국에서 확인된 백제 횡혈식 석실분은 모두 70여기로, 수도권에서 이처럼 많은 백제 석실분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설명한다.
감일동에서 확인한 횡혈식 석실분은 크게 네 곳에 무리를 이뤘다. 경사면에 땅을 파서 직사각형 묘광(墓壙·무덤 구덩이)을 만들고, 바닥을 다진 뒤 길쭉하고 평평한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구조다.

묘광과 돌 사이는 판축기법(흙을 얇은 판 모양으로 켜켜이 다져 올리는 방법)을 썼고, 천장은 점차 오므라드는 소위 궁륭식이다. 일부 무덤은 벽을 마감한 회가 남았고, 무덤으로 통하는 길인 연도는 대부분 오른쪽에 마련됐다.
무덤 크기는 묘광이 세로 330∼670㎝, 가로 230∼420㎝이고, 석실은 세로 240∼300㎝, 가로 170∼220㎝다. 높이는 180㎝ 내외다. 무덤 간 거리는 약 10∼20m다.
부장품으로는 풍납토성(서울 송파구 소재)에서 나오는 토기와 매우 흡사한 직구광견호(直口廣肩壺·아가리가 곧고 어깨가 넓은 항아리)를 비롯해 중국에서 제작된 청자 계수호(鷄首壺·닭머리가 달린 항아리)와 부뚜막형 토기 2점이 출토됐다.

이처럼 발굴된 감일동 고분군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성시대 백제의 도성이었던 위례성을 찾을 수 있는 열쇠가 될지, 또한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함께 백제 첫 도읍으로 제기되기도 했던 하남 이성산성을 중심으로 한 춘궁동 일대가 위례성으로 유력한 후보지가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하남문화원에 따르면 하남시 춘궁동 산36 일원에 위치한 이성산성(사적 제422호)의 총 둘레는 1천665m이고 내부 면적은 약 12만8천890㎡다.
또한 해발 209.8m인 토산으로, 성벽의 높이는 3~7m, 남으로는 청량산 자락인 금암산 줄기에 자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중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동쪽은 숭산인 검단산이 있고 남쪽은 남한산, 서쪽과 북쪽은 한강이 흐르고 있으며 서울 광장동의 아차산 서편에 이르기까지 한강유역의 넓은 지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북쪽의 적으로부터 한강유역을 방어하기에 매우 유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전략적 요충지의 기능은 충분히 발휘했다고 볼 수 있으나 산성이 축조된 시기와 축성의 목적을 알려주는 직접적인 문헌자료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학자 정약용과 중정남한지를 쓴 홍경모, 대동지지를 쓴 김정호는 모두 백제의 성이 하남에 있으며, 왕성 또한 고골의 궁안 마을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어 조선시대까지 춘궁동 일대에 백제의 왕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이후 일제시대의 사학자인 금서룡(今西龍)은 춘궁리 일대를 백제의 도읍지로 보고 이성산성을 '삼국사기' 개로왕조의 북성(北城)으로, 남한산성을 남성(南城)으로 보았다.
이병도 박사 또한 하남위례성을 춘궁동 일대로 보았으며, 잠시 천도하는 한산을 남한산 일대로 보았다.
하남/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