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톤까지 이르는 화물선·크루즈·카페리 등 입항 도와
갑문 통과·접이안, 1~5척 투입 밧줄 연결·정밀하게 이끌어
1974년 갑문 준공이후 활약… 항만 성장 함께 중요성 늘어
영종대교·연륙교 같은 해양건설현장 이동·지지 작업 맡아
인천서 가장 많이 건조되는 예선, 선장의 절반도 인천 출신
30만t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이 배는 원유를 가득 채우면 선박 자체의 무게까지 30만t을 훌쩍 넘는다. 이 배는 길이는 336m, 너비 59m로 축구장 3개를 합한 것보다 크다.
자동차가 주차할 때에는 옆 차량 또는 벽·기둥과 일정 거리를 떨어뜨려 놓는 것과 달리, 선박은 화물 하역과 승객 승하선 등을 위해 부두에 바짝 붙여 놓는다.
항만 종사자들은 이 같은 선박의 접안 방식을 '배를 붙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렇게 크고 무거운 대형 선박을 어떻게 부두에 안전하게 붙일 수 있을까.
아무리 항해 실력이 뛰어난 선장이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이처럼 큰 배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부두에 딱 붙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것이 바로 예선(曳船)이다.
예선은 선박의 접·이안을 도와주는 배다. 화물선과 크루즈, 카페리와 같이 규모가 큰 선박은 예선의 도움을 받아 접안한다.
선박과 예선을 줄로 연결한 뒤, 예선이 선박을 끌거나 밀어 부두에 붙인다. 선박 규모에 따라 1~5척의 예선이 투입되는데, C.VISION호와 같은 대형 선박에는 5척의 예선이 달라붙는다.
지난 7일 오후 인천 중구 역무선 부두에서 예선 '한창1'호가 내항 5부두로 입항하는 6만t급 자동차운반선 'GLOVIS CONDOR'호의 입항을 돕기 위해 출항했다.
내항으로 입항하는 선박은 '인천대교에서 갑문까지 들어가는 과정'과 '갑문에 들어가서 부두에 접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갑문은 수위를 조절하는 장치로,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한 항만에 설치된다.
GLOVIS CONDOR호가 인천대교를 통과하자 한창1호를 비롯한 예선 3척이 접근했다. 본선에서 얇은 밧줄을 던지자 예선 승무원들이 배에 있던 굵은 밧줄과 묶었다. 본선에서 밧줄을 잡아당겨 더욱 단단하게 고정했다.
본선과 예선들이 갑문 인근에 도착하자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갑문 너비는 34m, GLOVIS CONDOR호 폭은 32m다. 이 배는 갑문을 통과할 수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선박이다.
갑문은 긴 네모꼴 수로 모양이다. 선박은 이곳을 일직선으로 통과해야 한다. 자동차 자동세차장 기계가 작동하기 전 자동차가 정확한 위치에 앞바퀴를 놓아야 하는 것처럼, 선박도 갑문을 통과하기 전 위치를 잡아야 한다.
자동차의 경우 세차장 직원이 보통 자동차의 방향을 알려주지만, 선박은 본선과 연결된 예선 3척이 밀고 당기면서 본선의 위치를 잡는다. 이 작업은 본선에 탑승해 있는 도선사의 지휘에 의해 이뤄진다.
"한창 스톱!" 도선사의 명령이 무전기를 통해 전해진다. 한창1호 김은수(28) 선장은 명령을 들었다는 의미로 "한창 스톱"이라고 말하고 선박을 멈춘다.
이어 "한창 밀 준비" "한창 밀고" "한창 스톱" 등의 지휘가 연이어 들려오고 김은수 선장도 명령에 따라 선박을 조작했다. 한창호 등 예선 3척이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자 CONDOR호는 갑문을 통과할 수 있는 '정위치'에 서게 됐다.
예선에서 CONDOR호 선측에 물을 뿌렸다. 갑문과 선박이 스칠 경우 마찰력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CONDOR호는 무사히 갑문을 통과했고, 임무를 완수한 한창호는 역무선 부두로 향했다.
김은수 선장은 "갑문 작업과 유조선 돌핀 작업은 정교함을 필요로 해 아무래도 긴장이 된다"며 "특히 돌핀 부두에 접안하는 유조선은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한다"고 말했다.
한국예선업협동조합 인천지부 윤덕제 사무국장은 "예선은 전후좌우로 방향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특수 프로펠러를 장착하고 있다"며 "최근 건조되는 예선은 300t 안팎의 규모이지만 5천 마력 이상의 힘이 있다. 이는 1만t급의 선박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예선의 예는 '끌 예(曳)'자다. 말 그대로 끄는 선박이라는 뜻이다. 과거에는 예인선과 예선을 혼용해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인선은 선박이나 구조물을 끌고 가는 선박을 일컫고 규모가 크다.
예선은 선박을 끌고 간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선박의 접·이안을 도와주는 것을 주 용도로 사용한다.
예선의 활용은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임금이 탄 선박을 호위하는 용도로 예선을 활용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3년(1779년) 8월 3일 기사에는 "임금이 용주(龍舟)에 타고 선상(先廂)의 장사(將士)와 용호영(龍虎營)의 장사는 용주의 왼편 예선(曳船) 밖에서, 후상(後廂)의 장사와 경기영(京畿營)의 기고(旗鼓)는 용주의 오른편 예선 밖에서 함께 용주를 끼고 거가를 호종하여 건넜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천에서 예선이 본격적으로 활용된 건 1974년 갑문이 준공되고 나서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항은 외국 선박들이 물밀듯이 몰려왔지만, 부두 시설이 열악했다. 이 때문에 선박이 부두에 정박하지 못하고 인천 앞바다에서 바지선을 통해 화물을 하역했다.
한국인 최초 세계 일주 선장이기도 한 배순태(1925~2017)씨는 저서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에서 "갑문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외항에 닻을 놓고 바지를 이용하여 하역을 해 왔는데, 이런 하역 방식은 하역비가 몇 배나 더 들어갈 뿐만 아니라 작업의 효율성도 떨어져 시간이 많이 걸리고 위험하기까지 했다"고 했다.
1974년 갑문이 운영을 시작했고, 갑문을 통과하기 위해선 예선이 필수적이었다. 이후 남항, 신항 등 외항에 접안하는 선박들도 안전한 접안을 위해 예선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때에만 해도 예선은 국가가 운영했다. 1975년 항만법이 개정되면서 민간에서도 예선을 운영할 수 있게 됐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예선이 인천에서 나왔다.
1975년 설립된 예선업체 (주)흥해는 우리나라 최초 예선 '은성호'를 건조해 인천에서 운영했다. 지금까지도 예선은 인천에서 가장 많이 건조되고 있다.
예선은 바다 위에서 이뤄지는 건설사업에 활용되는 등 많은 역할을 했다. 인천에서는 인천대교, 영종대교 등 육지와 섬을 잇는 연륙교 건설사업과 항로 준설 등 해양 공사에 활용됐다.
해상에서는 건설자재와 장비를 동력이 없는 바지선에 두고 공사를 진행하는데, 바지선을 움직이거나 한곳에 고정할 때 예선을 사용한다. 예선 앞부분에 달린 고리와 바지선을 연결해 선박을 이동시키거나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흥해 박관복 전무는 "인천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민간 예선을 건조한 곳이다. 지금도 예선을 건조하는 곳은 인천을 제외하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인천의 예선업은 활황을 이뤘고 해기사 양성 교육기관인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졸업생들이 예선업에 많이 진출했다. 현재 예선업 선장 중 절반 정도가 인천해사고 출신이라는 것이 예선업계 설명이다.
인천에서 교육을 받은 선장이 인천에서 건조된 선박으로 인천항 일대를 운항하는 경우는 예선업이 유일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한다.
윤덕제 사무국장은 "항만이 점차 대형화되면서 예선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며 "특히 인천은 원유와 LNG 등 화학물질 운송 선박이 많이 드나들고,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예선은 사고 예방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