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법 강화 주민번호 삭제
추천→검증→발급 복지체계 구멍나
복지부-지자체 데이터 연동조차 안돼
서울·인천 관리 비슷 제2불법 가능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일선에 배치된 공무원이 급식카드 발급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배고픈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지원금을 3년간이나 자신의 생활비로 써온 것이다.
이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며 파문이 확산되자 곽상욱 오산시장은 즉각 사과 성명을 발표하고, A씨를 직위해제했다.
그리고 그가 부정하게 쓴 돈 전액을 환수조치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아직까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터넷 '○○맘 카페'를 비롯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A씨와 급식카드 시스템을 질타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으며, 특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오산시 공무원의 결식아동급식 횡령을 일벌백계하고 부패사례로 전 공무원 대상 교육자료에 넣어달라"는 청원이 게재되기도 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매스컴에 널리 알려진 아동급식카드란 과연 무엇이고 여기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각 지자체별로 운영되고 있는 아동급식전자카드
아동급식전자카드는 빈곤과 가정해체, 부모의 실직과 질병 등으로 결식이 우려되는 아동에게 급식을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기존의 종이 식권을 대체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2009년부터 각 지자체에서 발급하고 있다.
지원 대상으로는 보호자의 식사제공이 어려워 결식 우려가 있는 18세 미만의 취학 및 미취학 아동, 지자체로부터 소년소녀가정으로 지정된 아동, 한부모가족지원법상 지원대상 가정 아동, 보호자가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으로서 중위소득 52% 이하 가구의 아동 등이며, 담임교사, 사회복지사, 이·통 반장, 시·군 담당 공무원이 급식카드 지원 대상을 추천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 각 시·군의 상황과 예산규모에 맞게 발급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끼니당 지원하는 금액은 조금씩 달라진다. 경기도의 경우 'G-드림카드'라는 이름으로 1식당 4천500원을 지원하며 현재 도내 22개 시군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서울과 제주의 경우 5천원, 인천·광주는 4천500원, 경북·대전·울산은 4천원을 지원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1식 지원금액을 최소 4천원으로 권고하고 있다.
급식카드는 각 지자체와 가맹계약을 맺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GS25, 세븐일레븐, CU 등 주요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1식에 4천500원이 지원되지만, 카드 1회 사용 한도는 6천 원이기 때문에 가령 하루에 2식(9천원)이 지원되는 아동의 경우 6천원짜리 도시락을 사 먹을 수도 있다.
다만 과일·유제품·반찬류 등 급식카드로 구매할 수 있는 품목이 제한돼 있으며, 아동들의 건강을 고려해 과자나 탄산음료 등의 구매는 불가능하다.
#급식카드 무단발급 사고 왜 터졌나
오산시 공무원이 결식아동을 위한 급식카드를 허위로 발급받아 1억4천500만원(카드 사용 건수, 2만 5천건)이나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경기도 아동급식전자카드시스템(gdream.gg.go.kr)'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소득가정 아동들이 급식카드를 지원받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해당 행정복지센터(동사무소)에 인적사항과 신청(추천)인의 의견이 들어간 '아동급식 신청(추천)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담당 공무원은 아동의 개인신상정보를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 입력한 뒤 각 시·군의 재가를 받아 급식카드 지원을 확정하고, 경기도 아동급식전자카드시스템에 개인정보를 추가로 입력해야 카드 발급이 완료된다.
그런데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는 주민등록 번호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반면, 경기도 아동급식전자카드시스템에는 해당 아동의 성명, 생년월일, 연락처, 주소 등 아주 기본적인 신상정보만 입력하게 돼 있다.
더구나 두 시스템은 서로 호환되지 않으며 특히 두 곳에 모두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 경기도 아동급식전자카드시스템에만 아동의 정보를 허위로 입력하더라도 카드발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산시 공무원 A씨는 이런 점을 악용, 2014~2016년 지역의 행정복지센터 근무 당시 아동들의 이름, 생년월일, 학교 등을 허위로 입력한 뒤 총 31장의 아동급식카드를 발급 받았던 것이다.
특히 급식카드는 기프트 카드, 선불식 카드처럼 이미 결제시스템이 준비돼 있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곧바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카드여서 카드발급사인 금융기관에서도 사용자의 신원확인을 추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급식카드 문제 과연 경기도만의 일인가?
오산시 급식카드 사건을 계기로 현재 경기도에서는 급식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22개 시·군 아동들의 전수 조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12일 아동급식카드 관련 현안회의를 개최해 보건복지부와 협의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과 경기도 아동급식전자카드시스템의 정보 공유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문제는 이번 전수조사를 통해 급식카드 무단 발급 사례가 추가로 더 나올 가능성이 있고, 이것이 비단 경기도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는데 있다.
경기도 외에 광역·지자체에서도 급식카드 발급 시 지원대상자인 아동의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서울의 경우 행정복지센터 직원이 우리은행 내 사이트에 아동의 이름, 생년월일, 개인정보, 공카드(사용하기 전의 급식카드) 번호 등록 등을 하고 있다.
부산도 급식카드 사이트(busan.nhdream.co.kr)에서 주소, 학교, 전화번호, 이름, 카드번호만 등록하면 신규아동을 등록하고 카드 발급이 완료됐다.
인천 역시 같은 방식으로 동에서 일괄적으로 관리하는데 푸르미 사이트(www.purmeecard.com)에 주민번호를 제외한 아동의 기본 인적사항만 입력하면 카드발급이 가능했다. 따라서 제2, 제3의 급식카드 불법발급 및 무단사용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이에 대해 도 관계자는 "2014년도에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되면서 정부가 주민등록번호가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 급식카드 발급을 위한 정보입력 항목에서 주민번호를 삭제한 것"이라며 "복지부에서 담당하고 있는 행복e음 시스템과 정보망 연결을 하면 앞으로는 가상인물을 넣어 카드를 무단 발급하는 일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도내 한 복지담당 관계자는 "경기도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급식카드 발급 시 주민번호를 입력하게 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급식카드제도의 취지도 좋고 운영도 잘 되고 있는 편이지만, 이번에 드러난 취약점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든지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이는 복지부차원에서 총체적인 점검을 통해 개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선회·박연신기자 ksh@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