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하고 안정적인 물품 이송 위해 항 인근에 자리 잡아
부두와 3.5㎞ 거리 원자재 업체, 바로 가공해 전국에 공급
현대제철 같은 대형기업들은 전용부두 통해 물류비 절감
산단·배후단지 등 주변 일자리 창출·산업 '원동력' 역할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해 꾸려둔 물건이라는 점에서 구매한 순간부터는 구매자가 곧 '화주(貨主·화물의 주인)'가 된다.
가령 뉴질랜드에서 벌목한 소나무는 화주의 주문과 동시에 베어져 원목 형태로 선사에 전달된다. 인천항에 도착한 화물은 하역 작업을 거쳐 화주 업체로 옮겨진다.
원목은 방역과 가공 작업을 통해 제재목으로 만들어진다.
제재목은 건설현장의 거푸집, 목재제품 등에 활용된다. 이때 화주는 화물을 '누가 어떻게 효율적으로 저렴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인천항을 이용하는 화주들은 더 빠르고 안정적으로 물건을 보내기 위해 항 인근에 터를 잡거나 직접 전용부두를 조성했다. 새로운 형태의 신항 부두를 만들기도 했다.
20일 오전 10시께 인천 서구 가좌동에 위치한 (주)아주목재 작업장. 뉴질랜드에서 수입한 소나무 원목 1천여t이 북항에서 하역돼 작업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원목들은 방역을 거쳐 품질에 따라 선별된 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졌다. 굉음과 함께 이리저리 깎인 원목은 1~2분여 만에 얇고 긴 제재목이 됐다.
이렇게 연간 18만여t의 원목은 이곳에서 제재목으로 탄생해 전국에 공급된다. 북항 목재부두와 작업장 사이 거리는 불과 3.5㎞. 1999년 남동공단에서 시작한 인천 향토 기업 아주목재는 북항이 설립되던 시기에 맞춰 2008년 이곳에 터를 잡았다.
목재 업체는 대부분 원목을 수입해 가공·제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화물의 무게가 제법 나가 항에서 멀어질수록 물류비가 많이 든다. 북항 목재단지 인근 등 서구지역에 목재 업체가 집적해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북항 목재부두에는 지난 한 해 90여만t의 목재가 처리돼 전국 항구 중 가장 많이 목재를 취급했다.
아주목재 백남철 전무는 "호황기에는 목재를 납품해달라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우나 가서 숨어 있을 정도였다. 인천항을 중심으로 목재 업체가 집적해 있으면서 인천의 목재산업도 더 빠르게 발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폐목재로 인한 연안 오염, 톱밥에 의한 날림먼지 등으로 업계 자체는 '애물단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백 전무는 "주민들이 '골칫거리'처럼 생각하는데 억울하기도 하다"며 "잡화·공산품 위주의 컨테이너 화물 화주는 주로 인천항을 통과해 다른 지역으로 나가지만, 원목과 같은 원자재(벌크·bulk) 화물 화주들은 인천항 인근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경제를 이끌고 있단 것도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소형 화주들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모였다면, 직접 전용부두를 조성해 인천항의 이점을 극대화한 대형 화주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제철, 동국제강, SK인천석유화학과 같은 인천의 대기업은 각각 현대제철부두, 동국제강 고철부두, SK정유돌핀이라는 전용부두를 통해 원료를 들여 사용하고 있다.
한국가스공사, 한국남동발전(영흥화력발전소) 등 공기업도 각각 인천항 전용 돌핀을 통해 물류비를 절감한다.
이 중 물동량이 가장 많은 전용부두는 SK인천석유화학 정유돌핀이다. SK인천석유화학은 지난 한 해 2천257만여RT(운임료)의 유류를 수입했다.
영흥돌핀은 유연탄 1천580만RT, 현대제철부두는 철재·고철 1천393만RT, 동국제강부두에서는 철재·고철 95만RT이 처리됐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전용부두가 있기 전에는 화물차가 (북항에서 이동 중) 도로에 철근을 떨어뜨리거나 민원이 들어오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전용부두가 생기면서 물류비 절감 효과는 물론 재고 관리도 체계적으로 가능해졌다"며 "인천항은 수도권과 중국이 가까워 철강 업계에서는 이점이 크다"고 말했다. → 그래픽 참조
인천연구원(옛 인천발전연구원)이 2009년 발간한 '인천항 화물 이전 요인에 관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중소형 화주는 인천항은 물론 남동, 부평, 주안, 반월, 시화, 파주, 탄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와 인천지방산업단지 등 7개 국가산업단지와 수도권 60개 지방산업단지 배후에 분포돼 있다.
품목은 공산품, 자동차부품, 중고차, 잡화 등 다양하다. 인천뿐만 아니라 수도권 전역에서 국내외 교역에 큰 동력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에는 항만시설 준공을 주도한 정부가 수출과 수입을 도맡은 '화주'나 다름없었다. 백제 근초고왕은 삼국시대 중국과의 해상 교역을 위해 첫 교통시설인 나루터 '능허대'를 조성했다.
인천항만공사가 발간한 '인천항사'를 보면 제물포항과 갑문을 준공한 정부는 민간으로부터 직접 쌀, 콩, 홍삼, 금, 해산물을 사서 외국으로 수출하고 마포, 견직물 등을 수입해 민간 상인들에게 팔았다.
화주들이 인천항을 택하는 요인은 지리적 이점에 그치지 않는다.
효율적인 물류 서비스와 안정적인 관리, 물류 업체와의 신뢰도 등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2014년 해운물류학회에 실린 '항만배후지 물류창고 선택 요인에 관한 연구-인천항을 중심으로'라는 학술 논문에 따르면 인천항 배후단지 물류창고 운영기업들은 화주 기업 유치 방안을 위한 중요도를 묻는 조사에서 '서비스 비용(0.762)', '보관·배송·분류(0.747)', '안전한 제품 관리(0.717)', '지리적 위치(0.697)' 순으로 답했다.
항만 배후단지 조성과 같이 금융·교육 등 각종 기능이 한데 모인 도시와의 접근성까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다.
배준영 인천경제연구원 이사장은 "화주들에게는 여전히 비용 절감이 큰 화두지만 양질의 생산시설이 모여 있다거나 항만 배후부지, 세관 서비스, 거주 환경 등 도시가 잘 갖춰져 있는지도 중요한 고려 대상"이라며 "인천항은 이미 세계적 항만이 됐지만, 각종 비용 상승으로 화주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만큼 물류비용 절감을 위한 인프라를 갖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황 변화가 큰 해운업계에서는 화주·선사·물류업계 간 '협력'과 '신뢰'도 큰 영향을 차지한다. 일본의 경우 선주·화주·물류업계 간 협력을 통해 자체적인 선순환 구조(해운-조선-화주)를 갖추고 있다.
이상용 청운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물류업계가 뼈를 깎는 발전으로 화주 기업과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때"라며 "화주들이 안정적으로 화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고 화주와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항은 국내외 화주들에게 더 매력적인 부두가 되기 위해 진화하고 있다.
물론, 원자재 화물의 경제적 파급력이 인천 지역을 이끄는 원동력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물류 환경 속에서 인천항은 화물을 처리하는 단순 역할에서 벗어나 화주의 가치 향상에 초점을 맞춰 나가야 한다.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인천항 활성화에 대한 화주들의 기여도는 어느 한 곳을 딱 짚어 꼽기 어려울 정도로 식품, 공산품, 중고차, 사료, 목재, 철재, 원료 업계 등 수많은 화주들에 의해 발전돼 형성해왔고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며 "화주들이 인천항을 꾸준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항만 효율화, 홍보, 인프라 개선 등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