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계투-마무리 '투수 분업'
김용수 뒷문 단속, 역전패 불허
정규리그 4위, 플레이오프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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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 감독이 처음 지휘봉을 잡은 것은 서울 라이벌 OB에서였다.

프로원년 김영덕 감독 아래서 코치로 프로지도자의 이력을 시작한 그는 1988년 시즌을 마친 뒤 OB의 2대 사령탑이던 김성근 감독이 구단과의 불화 끝에 자진해서 물러난 자리를 물려받았고, 그곳에서 미국 유학 시절부터 가슴에 품어왔던 '자율야구'의 기치를 올렸다.

자율야구란 선수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각자의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채워가도록 유도하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평생 엄하고 험한 규율 속에서만 자라고 살아온 선수들이 자율을 이해하고 움직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고, 반면 구단이 성적이 나쁘지 않았던 전임자를 밀어내고 이광환 감독에게 기회를 준 이유는 당장 우승을 해 보이라는 단순한 요구 때문이었다.

1989년에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밀려난 채 5위로 시즌을 마감한 데 이어 1990년에는 시즌 초반부터 연패를 반복했고, 결국 10연패에서 벗어나자마자 다시 11연패에 빠져버렸던 6월19일에 그는 전격 해임당하는 쓴맛을 봐야 했다.

그래서 잠시 공백을 거친 뒤, 이번에는 백인천 감독이 자존심 싸움을 벌이다가 털고 일어선 빈자리를 물려받은 LG에서 그는 무작정 각자에게 과정을 맡기는 대신 각자의 책임감을 끌어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했고, 그 결과 1993년에 세상에 내놓은 것이 이른바 그가 명명한 '스타시스템'이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선발 로테이션의 고정, 그리고 계투와 마무리로 이어지는 확실한 투수 분업 시스템이었다.

1993년 LG는 선발진에 김태원과 정삼흠을 축으로 삼아 김기범과 차명석, 그리고 신인 이상훈을 배치했고 8년차 베테랑 우완 차동철과 신인 좌완 강봉수를 필승계투요원으로, 김용수를 마무리로 고정했다.

그리고 선발투수에게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기든 지든 6이닝 이상을 맡겼고, 화급한 사정이 없는 한 마무리 투수에게 2이닝 이상은 맡기지 않았다.

물론 결과가 아주 신통한 것은 아니었다.

선발진의 에이스 정삼흠이 15승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김기범과 이상훈이 9승, 김태원이 8승씩을 기록하며 각자 꼭 같은 숫자의 패전까지 떠안았고, 5선발 차명석은 그나마 7승 9패로 패전이 조금 더 많은 평범한 기록을 남겼다.

그래서 한 번 이기면 한 번 지는 흐름이 시즌 내내 계속되었고, 연타를 당하고 있는 선발투수를 좀처럼 교체하지 않는 모습은 '승리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비난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차동철과 강봉수를 거쳐 김용수로 이어지는 불펜만큼은 시즌 내내 강인한 모습을 보였고, 그래서 한 번 잡은 리드는 빼앗기지 않는 강팀의 면모를 서서히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마무리로 뛰던 80년대 후반 내내 매시즌 100이닝 이상(1986년 178이닝) 던져댔던 김용수는 그 해 만큼은 50경기에서 단 75.2이닝만을 던지는 여유를 누리며 5승과26세이브로 뒷문을 단속해 주었고, 그 덕에 정규리그 4위를 거쳐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하는 절반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김은식 야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