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번 중년 문하생들 모여 음미
금원 김씨·임제·매창 등 서당 토론
"외우고 쓰면 '메마른 정서' 회복"
'소양강 여관방에서 하늬바람 불어오니(江陽館裏西風起) / 먼 산은 취한듯하고 앞 강은 맑기만 하네(後山欲醉前江淸) / 사창의 달은 밝고 온갖 벌레는 울어대는데(紗窓月白百蟲咽) /외롭고 찬 이부자리에 꿈도 이루질 못하네(孤枕衾寒夢不成)' / 김덕희 소실이었던 금원 김 씨의 한시 秋夜有感(추야유감)이다.
지속되는 폭염 속에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이천종합터미널 뒤 동구서숙(東丘書塾)에서는 사서삼경을 배우는 중년의 문하생 7~8명이 모여 덕초(德樵) 전광홍 선생(77)으로부터 한시를 배운다.
폭염 속에 한시를 노래하며 하늬바람이 불고 찬 이부자리를 생각하니 무더위는 잠시 잊혀진다. 금원 김 씨의 마음을 헤아리다가 임제와 매창 등 조선 시대 풍류시인과 기생들의 한시도 이야기한다.
덕초 선생과 문하생들은 함께 시를 노래하고 각자의 생각을 말하며 해석한다.
35년 전통의 동구서숙은 한학과 서예를 배우는 옛 서당이다. 동구서숙의 '한시 강좌'는 2014년 이천문화원 교육 프로그램 '한시반'에서 시작됐지만 예산과 프로그램 과정 등 장소와 시간에 얽매이는 게 싫어 뜻을 함께하는 문하생들과 독립해 강좌를 이어오고 있다.
덕초 선생은 "사회가 메말라 있다. 시를 하면 정서가 살아난다"며 "일주일에 단 하루 한 시간씩 한시 기초자료를 구해 외우기 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운(韻)도 찾고 염(廉)도 찾고 기승전결(起承轉結)을 논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한시와 함께 율곡 이이(李珥)가 학문을 시작하는 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편찬한 격몽요결(擊蒙要訣) 제1장 입지(立志) 편에 나오는 '凡人이 自謂立志하되 而不卽用功하고…'(사람들이 자기는 뜻을 세웠다고 말은 하면서 바로 학문에 용공하지 않고…)를 읽으며 문하생들은 학문하는 자세와 인문을 뜻을 세우기도 했다.
덕초 선생은 "한시와 함께 격몽요결 등의 한학을 배우면 처음에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 같지만 수신(修身) 즉 사심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삶의 목표를 알고 현상의 뒷면을 볼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10여 명의 문하생들이 3~4년이 지나면서 한시 작품집도 내고 학문의 맛을 알아 가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면 무엇이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라며 "앞으로 내가 없더라도 이들이 학문의 길을 이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희를 바라보는 덕초 선생과 문하생들이 함께 한시와 한학을 탐닉하는 열정은 끝이 없었다.
여주/양동민기자 coa00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