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결정 하루만에 추방, 31개월째 폐쇄… 그야말로 재앙
'평화수역 합의' 계기로 진출, 남북관계 개선 자부심 생겨
북한인력 단번에 우수성 느껴… 임금·물류비 절감도 강점
남북·북미 정상회담후 후속조치 없어… 희망고문 끝내야
신한용(58) (사)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은 당장 내일이라도 들어가 가동할 수 있을 것만 같던 개성공단 운영 시점을 아직도 기약할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이같이 말했다.
신 회장은 차갑기만 했던 남북관계가 올해 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급속히 풀리고 4·27 남북정상회담, 6·12 북미정상회담 등이 연이어 열리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희망을 키우게 됐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을 위한 구체적인 후속 조치는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심지어 개성공단 시설 점검 등을 위한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 후 충남 예산에 따로 공장을 마련했지만, 운영은 어렵기만 하다.
신 회장은 "북한 핵 문제로 남북 경협에 대해 언급조차 금기시되던 상황에서 남북·북미정상회담 등이 진행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희망과 기대를 걸었지만, 회담 이후 뚜렷한 후속 조치가 이뤄진 게 없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경협을 언급한 부분에 다시 희망을 갖게 됐지만, '희망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며 "재가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합당한 보상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느냐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온다"고 했다.
개성공단 전면 폐쇄가 결정된 건 31개월 전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신 회장은 개성공단 폐쇄를 통보받은 '그날'의 상황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신 회장이 통일부로부터 "가급적 많은 공단 업체 관계자들과 함께 좀 모여달라"는 연락을 받은 건 2016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다. 전달 북한의 핵실험이 있어 개성공단 운영이 중단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던 시기였다.
신 회장은 2010년 천안함 사건, 북한의 연평도 포격 등에 따른 위기 상황에서도 개성공단의 명맥이 유지된 만큼, 공단이 폐쇄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명절인 만큼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30명 정도의 회원사 관계자와 함께 들어선 약속 장소엔 통일부 장관 등을 비롯해 경제부처 차관 등 관료들이 나와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들은 신 회장의 예상을 벗어나는 얘기를 꺼냈다.
한 관료가 "오늘 오후 5시부로 개성공단을 닫는다"고 했다.
공단 폐쇄까지 2시간 30분 정도를 앞둔 시점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정부 관계자들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 피해가 없도록 맞춤형으로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북한과 협상해서 공단 내 물건을 빼 올 수 있도록 3일의 시간을 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딱 하루가 지나고 북한이 모두 추방해 버렸다. 신 회장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며 "그렇게 군사작전 하듯 결정된 개성공단 폐쇄 조치가 지금까지 이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에서 어망 제조업체를 운영했었다.
2007년 남북 정상 간 서해 공동어로수역 지정과 평화수역화 합의가 개성공단 진출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인천과 중국을 오가며 어망공장을 15년 정도 운영했던 신 회장은 서해 공동어로수역에서 사용할 그물을 개성공단에서 만들면 사업적 측면뿐만 아니라 남북문제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북 관계 개선에 자신이, 그리고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이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점점 커졌다. 통일에 가까이 가는 데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도 생겼다.
신 회장은 "처음엔 돈을 벌려고 개성공단에 갔던 것도 사실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며 "개성공단을 더욱 놓지 못하는 건 이런 생각이 더욱 커졌기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원사는 120여 개에 달한다. 슈퍼나 세탁소 등 영업기업은 80여 개, 개성공단에 원부자재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5천여 개나 된다. 개성공단의 하루하루를 함께 일구던 이들이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 공장에서 200명 정도의 북한 근로자와 함께 일했다. 계획경제에 익숙한 북한 근로자가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사장들도 있었다.
중국에서 공장 운영 경험이 있는 신 회장은 북한 근로자들의 우수성을 단번에 느꼈다고 했다.
시장경제에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높은 이해도를 보였다. 납기가 급하게 잡힐 경우, 이를 맞춰줄 테니 수당 등을 더 달라는 식으로 역제안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서로의 삶에 조금씩 영향을 미치고, 또는 영향을 받으며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 것이다. 신 회장은 "개성공단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는 통일 학습장 역할을 했다고 본다"며 "매일매일이 통일이 이뤄지는 작은 공간이었다"고 했다.
개성공단은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에, 오전에 원부자재를 공급하면 오후에 우리나라 유통시설에서 판매할 수 있는 등 물류비 면에서도 강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말이 통한다'는 건 해외 공장 운영 과정에선 느낄 수 없는 가장 큰 장점이었다.
신 회장은 "70년 가까이 남북이 찢어져서 살았지만, 그래도 한 동포"라며 "생각에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걸 극복하니 나중엔 눈빛만 봐도 알겠더라"고 했다.
신 회장은 가진 것 없는 중소기업들의 자산을 찾기 위해, 또 남북 관계 개선에 기업들이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명을 다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반드시 재가동해야 한다고 했다.
신 회장은 제2, 제3의 개성공단이 지속해서 확산되면 그것이야말로 통일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멈춰 있는 개성공단을 다시 활기차게 가동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신 회장은 "우리가 살아서 개성공단에 들어가야, 우리를 보고 후발 기업들이 제2, 제3의 개성공단에 입주해 역할을 다하지 않겠느냐"며 "우리가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합쳐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가 하루빨리 개성공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한다"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신한용 회장은?
▲1988년 인하대 졸업
▲1993년 중국 어망공장 운영
▲1995년 신한물산(주) 설립
▲2003년~ 현재 인하대 초빙교수
▲2004년 인하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학위 취득
▲2007년 개성신한물산(주) 설립
▲2011년 신한물산(주), 인천시 비전기업 지정
▲2014년 개성공단기업협회 부회장 및 기획분과위원장
▲2017년~ 현재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