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전로한족회 대표자회의 개최 '우수리스크' 이어
구한말 의병근거지 '크라스키노' 3개 국경 접하는 '핫산'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까지 최재형 선생등 흔적 만나
"조국에 희생한 분들 뜻 계승… 고려인들과 교류 필요"
30여명으로 꾸려진 탐방단은 가을비를 맞으며 우수리스크와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등 3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항일운동의 흔적들을 찾아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 나가며 항일운동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전해 들으며 탐방단은 숙연해졌다.
탐방단은 절박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조국애를 되새기며 길지 않은 4일을 보냈다.
# 고려인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우수리스크
탐방단이 러시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우수리스크다.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우수리스크는 사실 연해주 지역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다.
1917년 5월 21일부터 31일까지 11일 동안 한인대표 100여 명이 참가한 '전로한족회 대표자회의'가 개최된 곳도 바로 이곳 우수리스크다.
같은 해 12월 제2차 대표자회의를 열어 러시아 한인 최고자치기관이자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기관인 전로 한족 중앙총회(고려국민회)로 바뀐다.
이후 전로 한족 중앙총회는 1919년 2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개편되며 노령 임시정부를 수립한다.
이 곳을 방문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번째는 이런 연해주 거주 고려인의 역사를 배워 볼 수 있는 공간인 고려인 문화센터가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2009년 건립된 고려인 문화센터는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와 독립운동사까지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고려인문화센터 앞에는 안중근 의사와 홍범도 장군의 기념비가 있다.
또 하나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과 최재형 선생의 흔적을 찾아 만나 볼 수 있다.
우수리스크에는 연해주 지역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인 최재형 선생의 마지막 거처가 남아 있다.
최재형 선생은 사재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면서 이범윤 의사와 함께 연해주 의병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됐다.
하지만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이 1920년 4월 참변을 일으켰을 때, 일본군에 붙잡혀 김이직·엄주필 등과 함께 총살 당해 순국하고 말았다.
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는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1948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상설 선생은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자신의 유골을 화장해 이 곳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 크라스키노와 핫산
러시아에서의 둘쨋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오는 날 탐방단은 버스를 타고 4시간이라는 시간을 달려 크라스키노에 도착했다.
크라스키노는 구한말 대표적인 항일의병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최재형 선생을 비롯해 이범윤, 안중근, 유인식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다.
또 크라스키노에서 두만강 방면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국경이 만나는 핫산이라는 곳이 나온다. 3개국 국경이 만나고 있기에 한반도 냉전이 종식될 경우 활발한 교역이 이뤄질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크라스키노와 핫산 일대에 대한 관심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한국과 북한, 중국 4개국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
경제라는 이슈로 관심을 받고 있는 크라스키노와 핫산은 100년 전에도 제국주의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치열한 경쟁지였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이 척박한 땅을 개척한 곳이다.
크라스키노 부근에는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정착해 형성한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 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크라스키노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김기룡, 백규삼, 황병길, 조응순, 강순기, 강창두,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춘화 등 12인의 독립운동가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단지동맹을 한 곳이다.
# 관광지가 아닌 독립운동의 거점 블라디보스토크
최근 몇몇 방송사 여행프로그램에 소개되며 2시간대에 갈 수 있는 유럽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한인독립운동의 중심인 신한촌이 있었다.
신한촌에는 헤이그 특사 중 한명이었던 이상설, 그리고 최재형, 이동휘 등이 활동했었다.
또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일세당, 대한국민의회, 노인동맹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도 활동했었다.
하지만 1937년 한인 강제 이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없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냉전시대 구소련의 태평양 함대가 모항으로 사용하던 도시였기에 이런 흔적들이 기념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곳이기에 구시가지 곳곳에는 항일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
주영훈 수원청미래충전소 대표는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오면서 많은 분들이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뜻이 후대에도 계속 계승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준택 경기르네상스포럼 상임이사는 "연해주지역에서 우리 전통 문화를 지켜 나가고 있는 고려인들과의 다양한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