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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없어 사측이 요구 받아들이지 않아
'관행' 비정상적 노동 묵과 더이상 못해
많은 이들 '가정의 가장' 고용불안 큰문제
업체도 영업이익 인적자원에 재투자해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넥슨지회의 첫 수장을 맡은 배수찬(34·사진)지회장은 8년 간 넥슨에서 일해온 '넥슨맨'이다.

게임 출시일이 다가오면 주말 없이,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일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평범한 개발자가 초대 지회장이 된 데는 "열심히 일하는 내가 다른 근로자의 권리를 빼앗고 있었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이 배경에 있다.

임금 없는 초과·연장 근무를 밥 먹듯 하는 동안 회사의 인정을 받게 됐지만, 결국 그것이 노동법이 통용되지 않는 게임 업계의 관행을 만들었다는 자각이다. 넥슨 노조가 출범한 지 닷새째 되는 지난 7일 성남 판교에서 배 지회장을 만났다.

- 게임업계의 노동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되던 이슈다. 게임업계의 노동조합, 왜 지금이었나.

"넥슨 노조만 한정해 보면 7월 1일부터 도입된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회사와 논의를 벌인 것이 계기가 됐다. 6월에 회사와 만나 얘기를 하는데, 노동시간을 맞추기 위해 유연근무제 카드를 들고 나왔다.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면 정시출근, 정시퇴근이 가능한 직종은 혜택을 보지만 야근이나 초과 근무가 잦은 부서는 크게 혜택을 보지 못한다.

본질적인 문제는 포괄임금제(연장·야간근로 등 시간외근로 등에 대한 수당을 급여에 포함시켜 일괄지급하는 임금제도)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고 근로시간에 따른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 이 부분 협상이 되질 않았다. 노조가 없으니 사측이 요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래서 네이버 노조에 찾아갔다. 거기서 얘기를 하다 (노조창립의)'발화점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지회장으로)나서게 됐다."

- 게임 업계의 문제,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일할 사람이 적다. 그런 상황 속에서 게임 론칭이 다가왔으니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게 지금까지의 현실이었다.

나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5일 만에 일을 끝내야 한다면 주당 70~80시간씩 일하면서 남보다 2배 빠른 속도로 일을 했다.

그래서 인정은 받았지만, 결국 그렇게 일을 함으로써 그런 풍토가 당연해지는데 일조한 셈이다. 내가 다른 근로자의 권리를 빼앗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 게임업계는 고용불안이 문제다. (기자: 넥슨 같은 대기업도 고용불안이 있나) 회사가 준비하는 게임 10개 중 9개는 망하고 1개만 성공한다.

게임이 망하면 해당 팀은 해체된다. 그러면 팀원들은 알아서 다른 팀으로 구직을 해야 한다. 아트 직군을 예로 들면, 귀여운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는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귀여운 화풍을 필요로 하는 팀이 없으면 팀을 못 구하는 경우가 생긴다.

다른 팀원들이 옮겨갈 팀을 다 구하고 몇 명만 남게 되면 그들은 결국 사표를 제출해야 하는 수순이 된다. 다른 직장은 퇴직시키려 책상을 뺀다지만, 게임업계는 책상을 못 빼면 그만둬야 한다. 고용 불안이 심각하다."

- 게임 업계 노조 설립 바람이 계속될까.


"스마일게이트도 노조를 설립했다. 네이버도 있다. 발화점에 다다랐다. 더 이상 관행이라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노동을 묵인하고 갈 수 없다.

노조 설립을 월요일(지난 3일)에 하고, 수요일까지 700명 이상이 가입했다. 구성원들에게 노조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던 거다. 이제 게임업체도 높은 영업이익률을 인적 자원에 투자해야 한다."

인터뷰 말미, 배 지회장은 흥미로운 얘기를 하나 덧붙였다. 노조 가입을 SNS 메신저인 카카오톡을 통해서도 할 수 있도록 해뒀는데, 특이점이 있다는 얘기였다.

"카톡 프로필을 볼 수 있잖아요. 프로필을 보면 아이랑 손잡고 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가족사진이 많습니다.

한국에 게임업이 뿌리내린 지 20년 정도가 지났고, 초기에 이 업계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제 40대 가장이 된 겁니다. 젊었을 때는 고용불안이 큰 문제가 아니었고, '이 팀이 안 되면 다른 회사로 가지'라고 생각했던 게 이제는 되지 않는 거죠. 게임 붐 20년 만에 이 업계에 노조가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신지영·배재흥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