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암리교회 - 일제만행 맞선 3·1운동 순국유적, 사진·증언 등 역사자료 숙연
남양성모성지 - 입구부터 들어선 나무 편안함, 곳곳서 천주교 성인 동상 만나
미리내성지 - 최초의 신부 김대건 순교후 안장… 깊은 오지 도로 잘 닦여 호젓
손골성지 - 박해 피신 신자 교유촌, 광교산 자락 위치 수원·성남서 접근 쉬워
은이성지 - 김대건 세례지, 기념관 조성… 인근 캠핑장·삼덕고개 따라서 사목

유독 더웠던 탓인지 가을 일교차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선한 날씨로 인해 여행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곧 있을 추석으로 인해 발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다. 하루 정도 짧은 여행, 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유명 관광지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번쯤 방문을 권하고 싶은 곳이 있다.
나를 돌아보고 역사를 되새기는 힐링 여행, 바로 성지순례다.

# 3·1운동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화성 제암리교회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위치한 제암리교회는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일본 헌병이 기독교 주민 23명을 집단으로 학살한 만행이 일어난 곳이다.
아픈 사연을 간직한 제암리교회는 현재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이하 순국 유적)'으로 지정돼 순교자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교회 내부에는 제암리를 중심으로 경기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어떻게 진행됐고 이를 빌미로 일본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알려주는 전시물들이 있다.
제암리 사건에 대한 증언과 사진 자료들을 하나하나 보다 보면 종교를 떠나 일제시대 민초들 가슴에 서린 독립 의지가 얼마나 강렬했는지 느껴져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성지순례'를 기획하며 자연스레 순국유적을 떠올리게 되는 건 아마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순교자들을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제암리 3·1운동 순국기념관 왼편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23인의 순교자 묘지 앞에 서게 된다. 공활한 하늘아래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선선한 바람 부는 가을날 가족과 함께 방문해 잠시 잊고 지냈던 우리의 아픈 역사와 독립을 위해 처절하게 대항했던 순국선열의 얼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를 추천한다.
꼭 제암리 사건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어도 청명한 가을 하늘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 화성 남양성모성지와 안성 미리내성지
한반도에 천주교가 소개된 건 임진왜란 전후라는 학설이 대세다. 임진왜란을 전후해 명나라에 사신으로 왕래한 이수광이 M.리치의 '천주실의', 중우론 등을 그의 저서인 '지봉유설'에 소개한 데서 비롯됐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자로 알려 있는 허균도 베이징에서 천주교의 12가지 기도문인 '십이단'을 가져왔다. 천주교의 도입은 실학에도 영향을 줬다.
실학자 이익과 그의 문인인 안정복 등은 천주교를 학문으로 깊이 연구했고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 형제도 천주교와 인연이 깊다.
건국 초기부터 숭유억불책을 써온 조선에서는 학문적인 접근이 이뤄진 천주학은 금기시됐고 많은 탄압을 받았다.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박해 당시 이름 없이 희생된 이들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또 한국 최초이자 유일한 성모마리아 순례성지다. 종교적인 의미가 강한 남양성모성지는 입구부터 나무들이 가득해 안정감을 준다.
5분여 걸어 남양성모성지 안으로 들어서면 아이를 안고 있는 다정함과 편안함, 그리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한 성모상이 반겨준다.
남양성모성지를 걷다 보면 마더 테레사 수녀상, 비오 신부상 등 천주교를 대표하는 성인들의 동상을 만날 수 있다.
미리내성지는 신유박해와 기해박해를 피해 충청지역의 신도들이 몰려들면서 형성된 곳이다. 미리내라는 이름은 천주교 신자들이 피운 불빛이 마치 깊은 밤하늘 은하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미리내 성지에는 1846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25살의 어린나이에 순교한 김대건 신부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시궁산과 쌍령산 사이에 위치한 미리내성지는 지금이야 도로가 잘 닦여져 있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지만, 이 도로가 없었다면 오지라는 말로 표현해야 할 정도로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두 성지 모두 책 한권 들고 방문할 것을 추천해 보고 싶다.
성지내를 산책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벤치에 앉아 책을 읽으며 호젓한 시간을 갖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조용한 성지를 산책하며 아직 이른 감은 있지만 올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을 권한다.
# 용인 손골성지와 은이성지
수도권에는 꼭 멀리 가지 않더라도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성지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손골성지다. 행정구역상 용인에 위치한 손골성지는 광교산 자락에 있기에 수원과 성남 사람들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손골성지도 미리내성지처럼 조선시대에 천주교 박해를 피해 신자들이 모여 살던 교유촌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머물던 프랑스 선교사 도리 헨리꼬 신부와 오매트로 벤드로 신부가 1866년 3월에 순교를 하게 된다. 손골성지는 두 분을 기리고 있는 곳이다.
은이성지는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처음 세례를 받고 사목 활동을 하던 곳이다. 은이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에 들어서면 김대건 신부의 활동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은이성지에서 마을을 지나 산쪽으로 올라가면 캠핑장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쳐 조금 더 걸으면 삼덕고개가 나온다. 이 길은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사목 활동을 다니던 길로 순교 후에는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수습해 미리내 성지로 옮겨갈 때 이용했던 길로 알려져있다.
성지를 방문하며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서늘한 가을을 즐기기 위한 여행, 나를 돌아보고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여행으로 남기를 바란다.
/김종화·강효선기자 jhkim@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