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수교 체결보다 빠른 1990년에 열린 인천~웨이하이 항로
저렴한 가격에 비자 발급 장점, 초기 표구하기 1개월씩 걸려
관광객 수요 항공기에 빼앗기면서 보따리상 비율 크게 늘어
호텔같은 시설·공간… 최근들어 한국인 단체이용객 증가세
하지만 인천항에서 한중카페리를 타면 14시간이나 소요된다.
누가 바다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허비할까 싶지만, 지난해에만 13만 6천605명이 한중카페리를 이용해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갔다.
15일 오후 6시께 인천 내항 1부두. 길이 196m, 너비 27m 크기의 대형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7호'(3만 1천t급)에 올랐다.
이 배는 한중카페리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한 신조선(新造船)이다. 그동안 한중 노선에 투입된 카페리들은 중국에서 건조됐거나 중고인 선박이 대부분이다.
컨테이너도 2호보다 30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많은 325TEU를 실어 나를 수 있다.
오후 7시가 되자 '두드루룽' 소리와 함께 선체 엔진이 돌았다. 갑판 위에 서자 상큼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배에 오른 승객들은 새로운 선박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선상에서 만난 위동항운 윤태정(56) 수석사무장은 1992년부터 한중카페리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는 "1990년 인천과 웨이하이를 잇는 한중카페리가 처음 출항한 이후 승객 구성이 크게 3번 정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의 서해 뱃길을 운항하는 한중카페리는 1990년 9월 15일 처음 운항했다. 한중 뱃길은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당시 중국을 가려면 홍콩을 거쳐야 했다. 한중 수교(1992년)가 맺어지기 2년 전 최초의 여객 직항로인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가 생겼다.
윤 사무장은 "비용도 싸고 비자를 미리 받지 않아도 돼 한국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며 "초창기에는 배표를 구하기 어려워 한 달씩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중카페리 한국인 승객은 중국 현지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중국과의 하늘길도 열리면서 카페리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점차 줄어들자, 그 빈자리를 채운 승객이 '보따리상'이다.
초기에는 한국 보따리상이 많았는데, 지금은 중국 보따리상이 더 많다는 게 윤 사무장의 설명이다.
이날 인천항을 출항한 뉴골든브릿지7호도 전체 승객 624명 가운데 중국 보따리상이 199명에 달했다.
배가 출항하자마자 중국 보따리상들은 객실이나 복도, 계단 아래 등에서 자신이 산 면세품의 포장을 뜯어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중국 세관은 1인당 가방 한 개(50㎏) 분량에 대해서만 관세를 면제하기 때문이다. 이를 초과하면 반입품을 빼앗거나 일반 화물보다 더 비싼 금액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중국 보따리상들 얘기다.
배가 출항한 지 1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박 쓰레기를 모으는 선미에는 면세품 쇼핑백과 포장지를 담은 1ℓ 크기의 비닐 봉투 60여 개가 쌓였다.
중국인 보따리상 류웬차오(45)씨는 "카페리는 한국에서 산 물건을 재포장할 공간이 넓은 데다 휴대할 수 있는 수하물 무게가 많다. 보따리상 대부분이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한중카페리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 단체관광객도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이날 뉴골든브릿지7호에 탄 조순학(67)씨는 1997년부터 한중카페리를 타고 중국을 여행했다.
이날 그와 함께 배에 탄 친구 5명도 한중카페리로 중국을 여행하다 만났다고 한다.
조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지만, 우리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배에서 편하게 있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맥주 한잔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게 카페리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씨를 만난 시간은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테이블에 둘러앉아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는 "선박 여행이 비행기보다 월등한 점은 역시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이라며 "2인 객실은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 호텔과 별 차이가 없다.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침대에 누우면 약간의 흔들림에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진다"고 말했다.
인천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 교역의 중심 도시다.
인천 연수구 옥련동 '능허대공원'. 이 공원에서 옥련사거리 방면으로 조금만 걸으면 인천시 기념물 제8호 '능허대 터'가 나온다. 378년 삼국시대 백제 근초고왕이 중국과 교역할 때 사신들이 출발한 '나루터'다.
백제 사신들은 인천~덕적도~중국 산둥반도에 이르는 '등주항로'라는 해상 루트를 다녔다. 한중카페리 최초 항로(인천~웨이하이)와 비슷한 경로를 1천600여 년 전에도 이용한 셈이다.
1883년 개항 이후 인천항과 중국과의 해상 교역이 다시 시작된다. 당시 인천항의 첫 국제정기항로는 상하이를 오가는 배였다. 인천시가 1983년 발간한 '인천개항 100년사'에 따르면 1883년 초부터 청국 상하이초상국(上海招商局)의 '난성(南陞)'호가 매달 1~2차례 상하이~인천을 정기 운항했다.
이 배는 이듬해인 1884년 10월 운항을 중단했지만, 청국 상하이초상국은 1888년 3월 '광제(廣濟)'호를 상하이~인천 항로에 다시 투입했다.
한중 뱃길은 1990년 웨이하이와 연결되면서 다시 열렸다.
이후 1992년 인천∼톈진(天津) 등 여러 한중카페리 항로가 추가로 개설됐다. 현재 인천항에서만 단둥, 옌타이, 다롄, 스다오, 잉커우, 칭다오, 롄윈강, 친황다오 등 10개 항로에서 카페리가 운항 중이다. 평택·군산에서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항로는 6개다.
"25년 전 웨이하이에서 인천으로 오는 '황금가교'(골든브릿지)호의 기적 소리를 시작으로, 한중 간 새로운 우정의 항해가 시작됐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 축사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연설한 내용 일부분이다.
이처럼 한중 간 인적·물적 왕래의 물꼬를 튼 위동항운 임직원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윤 사무장은 "인천과 산둥반도를 오가는 카페리를 3천 번 정도 탔다. 지난 28년 동안 한중 양국이 큰 이익을 거두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최근 항공기 운항이 늘면서 카페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한중 뱃길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