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곳에서 인생의 의미 찾는 사람 늘어… 日소설가 무라카미 조어 30년만에 유행
'욜로'·'휘게'·'라곰' 등 행복지수 높은 나라 트렌드… 돈·명예 대신 나만의 기준 좇아
유토피아는 사전적 의미처럼, 정말 아무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의 이상향처럼 좇았지만, 부와 명예도 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좋은 집에 살고, 화려한 차를 타고, 명품 옷을 걸치면 '행복할까?'라는 막연한 상상도 이젠 식상해 졌다.
그런 사이 행복의 지표 중 하나인 한국인의 웰빙·행복지수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최근 한 글로벌기업이 발표한 웰빙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23개국 중 최하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불안한 주거 문제와 미진한 노후 대비, 낮은 고용 안정성·가족 간 유대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또 스트레스 지수는 97%로 조사 대상 중 스트레스 지수가 가장 높았다.
자신이 잘 살고 있지도 못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대답이 다수인 것이다. 스스로 행복함을 느끼는 행복지수도 후진국보다 못하다. 아등바등 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찾기는 무엇이었을까?
최근에 '행복'하면 거론되는 단어 1순위는 '소확행'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행복을 거론할때 무조건 해시태그 되는 단어이다.
소확행의 원조는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1986)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를 맡는 기분' 등이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이다.
새로운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이 각광을 받으면서, 수필에서 쓰였던 일상 속 작은 행복이 30여 년이 지나 다시 사람들에게 불려 온 셈이다.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와 워라밸(Work Life Ballance) 등은 소확행의 친척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나의 행복이고, 그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를 깨닫는다면 아침에 반려견을 산책시키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퇴근하는 것도 행복을 위한 중요한 순간이 될 수 있다.
행복을 상대적 기준으로 두지 않고, 나를 위해 온전히 사용하는 방법도 소확행에 쉽게 이르는 길이다. 욕심을 버리고 행복을 채우는 '미니멀 라이프', 시골살이를 통해 느끼는 '세컨 라이프', 행복을 위해 쫓는 '행복 여행' 등은 소확행의 대표적 사례다.
소확행은 우리나라에서만 열풍이 일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의 휘게(hygge), 스웨덴의 라곰(lagom), 프랑스의 오캄(au calme) 처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에서는 소박한 행복을 찾는 라이프 스타일이 이미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돈과 명예로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쫒기 보다는, 내 기준에 맞는 행복의 삶을 설계하는 것이 소확행일지도 모른다.
지난 1995년 개봉했던 웨인왕 감독의 '스모크'라는 영화는 소확행의 느낌을 알게 해주는 가이드북이 될 수 있다. 담배가게를 운영하는 오기 렌(하비 케이틀)은 13년 동안 매일같이 아침마다 같은 장면만을 찍어 배경은 한결같고 인물만 다른 사진이 이젠 무려 4천여 장의 작품을 만들었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작은 변화의 재미를 찾는 그의 취미가, 지금 말하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는 것을 영화를 본지 20년이 지나서야 느낀다.
작은 일에서 확실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행복의 기준과 기대를 낮춰야 한다. 나를 둘러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의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
마음만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욕심을 버리고 하루하루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소확행을 위해서는 조금의 연습도 필요한 법이다.
배연국씨가 쓴 '소확행'이라는 책에는 간략한 소확행 실천법이 나와 있다.
"진정한 행복이란 작고 소소한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따뜻한 모닝커피, 북적이는 지하철,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행복하지 못한 이유도 설명돼 있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의 커트라인을 너무 높게 설정한 까닭이다. 커트라인만 낮추어 작은 일상들을 기쁨으로 받아들인다면 행복하지 않은 일들이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