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2월 개봉한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1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관람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평론가들은 특별한 갈등 구조 없이 청년들의 시골살이를 그림처럼 예쁘게 담은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해 도시의 삶에 지친 청년들의 막연한 귀촌 욕구를 적절한 시기에 읽어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통계청과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가 공동 발표한 '2017년 기준 귀농어·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어·귀촌인은 51만6천817명으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처음으로 50만 명을 넘었다. 시골 사는 것이 꿈인 시대가 왔다. 귀농·귀촌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서울에서 살다가 2년 전 인천 강화군 볼음도에 정착한 백창흠(59)씨에게 '시골살이'에 대해 물었다. 그는 "불편한 점은 있지만, 서울에서 살 때보다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고 답했다.
"백 선생이 새로 생기는 생태계 마을을 맡아줬으면 좋겠어." 2016년 4월 마을 주민이 건넨 이 말을 시작으로 백씨는 250여 명이 사는 작은 섬 볼음도에 정착하게 됐다.
당시 백씨는 아는 선배의 이사를 돕기 위해 볼음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는 "주말마다 볼음도에 왔는데 3번 연속 여객선이 결항하면서 섬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며 "그때 일손이 바쁜 마을 주민들을 도왔는데, 주민들이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백씨는 그날부터 '볼음 생태계 마을' 사무장이 됐다.
아내가 일본인인 백씨는 1997년부터 10년 정도 일본 나고야에서 생활하다 2008년 한국에 돌아왔다.
그는 "일본에서의 삶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10년 정도 살다 보니 우리나라가 그리워졌다"며 "학교에 다니던 두 딸과 아내는 일본에 그대로 남고, 나만 서울로 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그가 생각한 것보다 힘들었다. 일본에 가기 전 그는 화가로 활동하며 나름대로 미술계에서 인정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된 미술 관련 서적 2권을 번역해 국내에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서울에서 백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는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내가 갖춘 능력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백씨는 문화축제 기획 사업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문화축제를 기획하려면 기관을 상대해야 하는데, 직선적인 성격이다 보니 갈등을 많이 빚었다"며 "일도 잘 풀리지 않았고,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가족이 있는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가장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덧붙였다.
그에게 볼음도 주민들의 제안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같았다고 한다.
강화도의 여러 부속 섬 가운데 하나인 볼음도는 이주를 결정하기 쉬운 섬이 아니다. 인천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강화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시간 남짓 가야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가 하루에 2번 운항하며, 이마저도 안개 등으로 결항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차를 타고 도심에 갈 수 있는 다른 시골보다 훨씬 불편한 곳이다.
백씨는 "선배 이사 때문에 이곳에 왔고, 배가 결항하면서 뜻하지 않게 오래 머물게 됐다"며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수락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도시의 많은 사람은 시골 생활의 한적함을 꿈꾸지만, 백씨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간다. 게스트하우스 형태로 운영하는 볼음 생태계 마을을 혼자 관리하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정리와 주변 청소는 물론이고, 자질구레한 행정 업무도 전부 처리해야 한다. 갯벌 체험, 망둥이 낚시 체험 등 생태계 마을 프로그램 운영도 그의 몫이다. 그는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곳보다 서울에서 사는 것이 낫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백씨는 "일본에서 돌아와 우리나라에서 일해 보니 (우리나라는) 모든 일이 감정 노동화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일본은 내가 맡은 일만 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일과 함께 주변 인간관계까지 함께 잘 처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에서의 생활을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맺는 과정에 힘을 쏟았던 시기"라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소음, 매연과 인간관계에 시달리던 그때보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사는 지금이 낫다는 게 백씨의 생각이다.
그는 "이곳에서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서울처럼 계산적으로 인간관계를 관리하지는 않는 것 같다"며 "이런 피로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했다.
백씨는 "시골살이라고 모두 편하지는 않겠지만, 나에게는 볼음도가 잘 맞았다"며 "지금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시골살이에 한번 도전해봤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아이클릭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