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서… 못 배워서… 다사다난했던 시대
그래도 자식들 때문에 좋은추억으로 남아
끊임없이 변하는 인생처럼 변한다는 행복
아무도 모를 것이라며 짓는 미소에 묻어나
지친 몸 일으켜 삶의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산다는 것이 참 힘에 부칩니다.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고 맙니다. 그래도 하루를 견디며 사는 건 이유가 있겠지요.
그래요, 우리는 꿈이 있습니다.
오늘 힘들어도 내일은 조금 더 '행복' 할 거라는 소박한 꿈입니다. 결국 우리네 삶은 '행복'을 찾아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긴 여정입니다. 중간중간 소소한 행복으로 힘을 내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끔 한 번씩 뒤를 돌아봅니다. 얼마나 왔을까. 다른 이들의 걸음도 재어 봅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 경인일보가 창간 73주년을 맞아 '우리 지금 행복한가요'라고 질문을 던져 본 것은 이런 당신과 '어깨동무'를 하려는 마음에서 입니다. 혼자가 아닌 우리, 행복은 함께 찾아가는 것이니까요.
★ '길면 나빠/ 사연이 나와/ 길면 나빠/ 전설이 나오잖아 (한춘자 作)'
경인일보가 탄생한 1945년은 대한민국 역사의 변곡점이었다. 73년이 지난 올해, 2018년은 창간의 그해처럼 사회 곳곳에서 기존의 상식이 뒤집히며 새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몰아치는 변혁의 물결 속에서 어떤 이는 희망을 그리고, 어떤 이는 혼돈을 겪는다.
그래서 시를 쓰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혼돈과 변화의 시대, 많은 이들이 잡으려 애쓰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처럼 실체를 찾지 못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묻기 위해. 그들은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공군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마을, 아무것도 없는 벌판 같다고 해 벌터마을(수원 서둔동)이라 불리는 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시를 쓰며 황혼을 맞고 있다.
할머니들의 시는 투박하나, 곧 영욕으로 이어진 그들의 '인생'이다. 격동의 한국사를 맨몸으로 헤쳐 온, 평범하지만 위대한 삶을 산 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행복이 무엇인가요?"
★ '20년 젊어진 한춘자/ 나는 정치하고 싶어/ 20년 젊어지면 57살 한춘자/ 학교 갈꺼야.'
벌터마을 경로당에서 만난 한춘자 할머니는 아주 늦게 서야 학교에 가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엄마한테 학교 가기 싫다고 거짓말을 했어. 아버지는 호국단에 끌려가고, 엄마 혼자 소작일로 겨우 입에 풀칠만 하는데 욕심을 낼 수 없었지. 그런데 정말이지 학교에 가고 싶었어."
할머니 한춘자는 이제 학교도 가고, 한 발 더 나가 정치도 하고 싶다.
★ '분늠은 옛날에 아버지가 지었어/하도 죽어서 붙들라고/이렇게 (박분늠 作)'
"머리 위로 폭탄 실은 비행기가 뱅뱅 돌고 나랑 엄마랑 보리밭 한가운데 숨어있어. 비행기가 너무 무서운데, 보리밭을 나가면 인민군과 마주치잖아. 엄마가 목숨 걸고 집에 뛰어가 감자 몇 개 주워 오는 거야. 그거 먹고 버텼지."
할머니들이 살던 세상은 지금처럼 욕심낼 것이 없었다. 그저 숨만 붙어 있어도 고마운 세상이었다.
★ '옛날엔 낫질 좀 했지/ 닷 마지기 맡아가지고 도급으로 매는거야/ 그거 다하려면 숨도 못 쉬어/ 그렇게 돈 벌어서 살았어 (김순분 作)'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래도 가난은 쉬이 물러나지 않았다. 할머니의 기억 속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가장 슬픈 것이기도 했다.
"애들만큼은 내가 못한 거 해주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일했어. 아이들이 크면서 공부를 참 잘했어. 학교에 합격했다 소리만 들으면 고생했던 거 싹 씻기면서 너무 행복한데, 한편으로 슬픈거야. 돈이 없으니까. 합격하고도 죄인처럼 '불효했다'고 말하면 그게 너무 서글펐어. 그래도 애들때문에 행복했어. 지금도."
다시 행복에 대해 물었다.
"행복이 어떤 건지 어떻게 아나. 아무도 모를걸. 근데, 인생은 요술쟁이야. 변하고 또 변하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게 인생이야. 행복도 비슷해. 어떤 날은 내가 제일 불행한 것 같은데, 또 별 것 아닌데도 행복하고 가끔 진짜 좋은 일이 오기도 하고. 요즘 젊은 사람들 사는 것 보면 마음이 아파. 돈이 너무 최고가 됐어. 살아보니까 부자도 다 부질없어. 하고 싶은 대로 마음 편하게 살아. 사는 것 그게 행복이야. 포기하지마."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할머니들의 얼굴에서 얼핏 미소가 보였다. 그게 행복이라는 걸까.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