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삽니다.”
 
대낮인데도 새까맣게 몰려온 먹구름이 폭우를 쏟아내고 있던 18일 오후 화성시 비봉면 국도변에서 포도를 팔고 있던 박모(67·여)씨는 멍한 표정으로 굵은 빗줄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예년 같으면 청명한 가을날씨를 헤치고 달려온 운전자들이 먹음직한 포도의 유혹을 못이겨 꼬리를 물고 한 상자씩을 사갔지만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박씨는 “하루 걸러 계속 내리다시피한 비 때문에 포도수확은 절반으로 줄었고 맛도 엉망이라 찾는 사람도 없다”고 하소연했다.
 
같은 시간 안성시 미향면 과수원. 아들과 함께 빗속에서 떨어진 배를 줍고 있던 정모(61)씨도 “10년째 배를 재배해왔지만 올해처럼 많은 비는 처음이다. 이제는 비를 원망하는 것도 지쳤다”며 긴 한숨만 내쉬었다.
 
벼농사를 짓고 있는 농가들의 시름은 더 컸다. 가을볕이 들판을 달궈도 시원치 않을 판에 연일 내리는 비로 농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200㎜가 넘는 비가 쏟아지면서 경기남·북부에 호우주의보와 경보가 발령된 이날 폭우속에서 논에 물을 빼고 있던 정모(51)씨는 “아예 논을 다 갈아 엎고 싶은 심정”이라며 구멍뚫린 하늘을 원망했다.
 
올초 영농자금으로 5천만원을 농협에서 빌렸다는 정씨는 “비 때문에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 정도밖에 안될 것 같다”면서 “결국 이렇게 빚더미에 올라 앉을 것을…”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평택시 오성면에서 농사를 짓는 장모(64)씨도 “인위적으로 손을 쓸 시점은 지났다. 이제는 햇볕이 내리쬐기만을 하늘에 바랄 뿐”이라며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장씨의 소원과는 달리 농림부와 경기도농업기술원, 경기도 등은 “이달 현재 ㎡당 벼알수가 3만7천375개로 전·평년대비 2.3% 줄어들었고 이삭수도 18.6개로 전·평년보다 0.6개 적어 흉작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특히 19일도 도내 전체적으로 60~80㎜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예고돼 도내 농가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만 갈 수밖에 없다.
 
도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일조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계속된 비로 병해충까지 번져 품질저하와 함께 20~30% 정도의 수확감소가 불가피할 것”이라며 “벼는 출수 이후 한달 동안에 벼알 무게가 결정되므로 기상여건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대흉작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정양수기자·chys@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