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열리는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체육학습대회)마저 마음대로 열 수 없는 삭막한 세상이 됐다. 운동회가 열리게 되면 학교 주변 주택가가 시끄러워진다며 소음 공해 민원을 제기하는 속좁은(?) 주민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천시 서구 연희동 A 초교는 최근 비좁은 운동장 사정으로 가을 운동회 일정을 저·고학년으로 구분해 열었다가 인근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학교측은 이같은 민원을 우려해 종목 등을 대폭 축소해 운동회를 열었지만 운동장과 맞붙어 있는 D·H 아파트에 입주한 일부 주민들로부터 '운동장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며 항의하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들은 “운동회를 하루만 열어도 못참겠는데 어떻게 3, 4일씩이나 운동회를 할 수 있냐”면서 “학교 스피커 소리며 애들 잡음, 악기 소리로 얼이 빠져 생활을 못하겠다”고 아우성 쳤다.

인근 K 초교는 지난해 운동회 때문에 지역주민들에게 얼마나 시달렸던지 올 가을엔 아예 운동회를 학교 운동장이 아닌 인근의 체육 공원을 빌려 열기로 했다. 이 학교는 가을운동회 연습도 학교에선 가급적 안하고 체육공원까지 나가서 하는 등 민원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남동구 구월동 A 체육공원 주변 주민들은 올들어 인근 초등학교가 비좁은 운동장을 이유로 가을 운동회를 체육공원에서 개최하려 하자 관계당국에다 체육공원에서의 행사를 자제해 줄 것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체육공원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는데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까지 할 경우 견디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주민 김상경(57·남구 관교동)씨는 “체육공원에서 많은 행사가 열려 동네가 시끄러워 못살 정도”라며 “인근 주민들 민원 때문에 학교 운동장을 못 쓴다면 체육공원은 왜 사용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선 급속한 도시화로 마음껏 뛰놀고 동심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초등학교 가을운동회마저 빛바랬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 A 초교 교장은 “이젠 민원이 무서워 가을운동회마저 마음대로 못하는 세상이 됐다”면서 “학교 운동장 사용을 자제하고 행사도 대폭 줄이다 보니 이젠 아예 행사를 하지 않는 게 나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할 구청인 서구 관계자는 “과거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이런 민원들이 일부 동사무소에 접수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무척 곤혹스럽다”며 “자기 자식이 학교 운동장도, 인근 체육공원도 사용 못해 운동회를 못한다고 생각하면 이런 민원 제기는 신중히 해야 할것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