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엘리트집단의 현직 女검사
TV서 남성 간부 성폭력 고백
전 국민 분노·공감 일으켜
문화계부터 직장 곳곳서 '미투운동'
'뿌리깊은 악습' 경각심 불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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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이슈는 단연 '젠더'다.

 

지난해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인기로 회자되기 시작한 여성 문제가 올해는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열풍으로 옮겨와 본격적인 사회 이슈로 다뤄졌다.

 

문제인 줄 알지만 관행이라 덮었고, 그래서 그것이 문제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마치 폭포수처럼 여성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을 통해 촉발된 성폭력 문제는 곧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여성차별 문제로 확대됐고 남성과 여성의 성 대결로까지 비화됐다. 

 

이에 올 한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젠더 이슈를 정리하고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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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퍼포먼스 참가자들

# 뿌리 깊은 성폭력 관행을 폭로하다


올해 1월, 현직 검사인 서지현 경남 통영지청 검사가 TV 뉴스에 출연해 자신의 성폭력 경험을 고백했다. 

 

8년 전 한 장례식장에서 간부급 남성검사가 검찰 식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특정신체를 수차례 만졌다고 폭로한 것. 

 

수치심과 자괴감에 괴로워하던 그가 방송에 자신의 얼굴까지 공개하며 폭로한 데는 "나와 같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그 일이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어서"였다. 

 

우리 사회 최고의 엘리트 여성,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라 꼽히는 그녀의 고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분노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바로 사회 전반의 미투운동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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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 출석하는 이윤택 연극연출가

미투운동은 문화계로 옮겨갔다. 

 

연희단패거리 예술감독이자 유명 연극연출가인 이윤택 씨가 오랜시간 여성 단원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자행해왔다는 폭로가 이어졌다. 

 

비단 연극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배우 조민기, 조재현을 비롯해 영화감독 김기덕 씨 등 연예계 유명인사들도 미투운동의 가해자로 등장했다. 

 

이들의 성폭력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의 전형이었다. 

 

상식을 벗어난 이들의 성폭력에 피해자들은 꿈을 포기하기도 했고, 오랜시간 침묵하며 괴로움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결국 용기 있는 고백이 이어지며 문화계에 잘못된 악습을 바로잡는 계기가 됐다.

특히 미투운동은 유명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다. 각자의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사회 안에서 은연중에 용인됐던 성폭력에 대해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발하는 남성들도 많았지만, 상당수의 남성들은 그간의 무지를 인정하며 스스로 성찰하는 태도로 미투운동을 지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투운동 이후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이른바 '2차 가해'는 또 다른 문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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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김기덕 감독

#여성, 나의 문제를 이야기하다

미투운동의 확산은 성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회 전반에 걸친 여성 차별문제로 확대됐다. 

 

일부 여성운동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만 거론되던 이른바 페미니즘을 거부하지 않고 평범한 여성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각종 미디어는 물론, 출판계도 이에 부응하듯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작품을 쏟아냈다. 올해 출판계는 총 114종의 페미니즘 관련 도서를 출판했는데 최근 3년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 같은 관심은 몰래카메라와 디지털 성범죄 등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여성 대상의 범죄해결을 위해 여성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 사회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특히 홍익대 남성누드모델의 사진이 인터넷에 유출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여성 범죄의 공포를 알리는 분위기로 반전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몰래카메라로 남성모델을 찍은 여성이 경찰에 긴급체포됐는데, 상당수 여성들이 "우리는 날마다 몰카의 공포 속에 살고 있다"며 시위를 시작한 것. 

 

혜화역 시위는 온라인 상에서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또 다른 캠페인으로 이어졌고, '탈코르셋'과 '여성소비총파업' 등의 새로운 운동으로 전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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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을 촉발한 서지현 검사

많은 여성들이 참여하는 적극적인 여성운동이 여성 차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됐지만, 이는 갈등의 시작이기도 했다. 

 

특히 '워마드' 등 극단적인 여성운동단체들의 등장은 여성운동을 남성혐오 프레임에 가두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일간베스트' 등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취급하거나 혐오하는 남성 단체들이 이들 여성단체를 싸잡아 페미니즘 자체를 부정하며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들간의 싸움은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비화됐다. 

 

  그럼에도 이제껏 우리 사회에 이만큼 여성문제가 전면에 대두된 적이 없거니와 활발하게 성차별의 문제를 논의한 적이 없었던 만큼 여성운동의 발전적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몰카 여성대상범죄 소극적 수사등
사회 전반 '성차별' 문제로 확대
일반 시민도 페미니즘에 '관심'
관련 법·제도 보완논의 이어져
'구조 변화' 장기적 대책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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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82년생 김지영'
# 법과 제도의 변화 시급

이와 같이 올 한해는 페미니즘을 필두로 사회적 차별의 현실을 끄집어 내 공론화하는데 집중했다. 

 

이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차별을 조장하는 법과 제도의 보완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스토킹처벌법과 디지털 성폭력을 비롯해 강간죄 등 여성이 타깃이 되는 각종 범죄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방향으로 기존의 법을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불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피해자 구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여성의 열망과 상관없이 국회 등 정치권의 반응은 아직 미지근한 상황이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정혜원 연구원은 "올 한해 미투 운동으로 정치권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젠더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가장 고무적인 일이다. 정부 뿐 아니라 경기도 등 지자체에서도 실질적인 성평등을 이루기 위한 중장기적 정책을 만들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돼있다"며 "단순히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행위적인 해결책에만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상당히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고, 관계 중심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마련됐고, 정부에서도 내년 젠더폭력 방지를 위한 국가행동계획을 준비 중이며 경기도 역시 지역 특수성에 근거한 중장기 발전계획을 계획하고 있다. 앞으로 단기적 처방보다는 구조를 변화시켜 패러다임을 바꾸는 형태로 여성운동이 진화할 것이며, 이는 저출산, 가족, 일자리 등 다양한 분야의 성평등 정책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연합뉴스·민음사 제공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