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을 받치고 잠들었던 나무기둥에서
새벽이슬 냄새가 훅 끼쳐온다
사방에 울울창창하게 뻗은 녹음들
현시를 잊은 채 창공에 닿아 빛나고
꿈결처럼 말을 거는 선선한 바람에
나는 나무들이 지어놓은 미몽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새소리로 엮어놓은 문패를 열고 들어가자
억겁의 땅으로부터 솟은 나이테의 내력이
기둥을 키우며 나의 발목에 작고 푸른 원주를 새기고
육신과 나무, 나무와 육신 사이를 비집고 난 샛길 사이로
와본 적 있는 것만 같은 울렁이는 향수가 지천에 빛난다
목피들이 전생을 벗겨내는 소리가 알싸한 그 길목에선
곤줄박이 한 마리가 잎새 한 장을 전해준다
해독할 수 없는 이끼들의 필체로 쓰인 문장들
지워지지 않을 나의 태곳적 이름을 발설하고 있다
무한한 혈맥으로 엮인 나무 그늘 속
편안히 누워 흙이 된 이름들을 짚어본다
끝없이 이어져 불거진 이 뿌리들은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을까
억겁의 계절을 지나도 숨 쉬는 숲은
태양과 달을 이고 은빛 땀을 대지로 흘려보내고
나는 한 장의 연서를 쥐고 숲에서 깬다
뒤돌아보면 푸른 절경이 등허리에 축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