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구가 없다. 산업도 농업도 그리고 관광마저도, 그 어느 하나 기댈곳 없는 여주군의 현실은 늦가을 날씨만큼이나 쓸쓸하기만 하다.
 
19일 오후 영동고속도로와 42번 국도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려 찾은 여주군 강천면 부평리의 풍경은 여느 시골농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추수를 끝낸 들녘이 휑하니 펼쳐져 있고 드문드문 자리잡은 농가에서는 때때로 개짓는 소리가 들릴뿐 좀처럼 사람들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20여년전만 해도 부농소리를 들었던 부평2리도 어려운 농촌현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며 이제는 늙은 부모들만이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54가구에 전체 주민은 250여명이지만 이중 20~50세는 고작 7명에 불과하다. 젊은이들이 모두 떠난 마을은 막 겨울문턱에 들어서면서 적막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부평2리 양성만(58) 이장은 “노인들이 많아졌을뿐 30년전과 변한 것은 없다”며 “농사만 지어서는 살 수 없으니 어떻게 젊은이들을 붙잡아둘 수 있겠냐”며 쓸쓸함을 달랬다.
 
하지만 얕은 야산을 경계로 맞닿아 있는 이웃마을인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의 풍경은 부평2리와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바둑판처럼 잘 짜여진 부지에 수십개의 공장이 들어서있고 자재와 완제품을 연방 실어나르는 차량들의 바쁜 움직임에 활기가 가득했다.
 
그곳은 문막 농공산업단지로 기술집적형 무공해산업 분야 공장 54개가 입주해 3천800여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 문막 공단은 인근 우산산업단지와 태장농공단지와 기능적으로 연계돼 있어 이들 공단의 총규모는 127개 업체에 고용인원은 7천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강천면의 제조업체는 고작 16개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대부분 영세업체이다. 또 여주군 전체의 생산공장을 포함한 제조업체를 모두 합해도 290여개 업체에서 5천80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점에 비추어도 비교가 안된다.
 
경기도의 동쪽 끝 강천면이 해체돼가는 농촌공동체의 끝자락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강천면과 잇닿은 이웃마을 문막읍은 특성화된 지역공단의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두 지역은 영동고속도로와 42번 국도를 끼고 있고 넓은 평야지대인 점 등 교통·지형적 조건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그 절대적 차이는 강천면이 행정구역상 경기도인 반면 반계리는 강원도에 속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교통 등 종합적인 입지여건은 서울에서 조금이라도 가까운 강천면이 유리하지만 강원도가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반면 여주군은 경기도에 속해있다는 이유만으로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의 강력한 규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주군은 예부터 질좋은 쌀로 유명한 고장이지만 농업 또한 뾰족한 대안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90년 4만4천여t이었던 쌀 생산량은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크게 변한 것이 없어 지난해 4만6천여t을 기록했다. 물론 경지면적이 줄어들어 생산성이 조금 높아진 면은 있지만 여주쌀은 고품질 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을뿐 여주군의 살림을 살찌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농촌이 처해있는 암담한 현실을 여주군도 비껴가지는 못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 기댈 곳은 레포츠 및 관광산업이지만 이 또한 신통치 않다. 여주군은 그 어느 지역보다도 빼어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고 유서깊은 문화재들이 즐비한 곳이다. 국보인 고달사지 부도를 비롯해 신륵사와 세종대왕릉 등 문화유산이 군 전지역에 포진해 있고 남한강과 골프장 등 레포츠 자원도 풍부하다.
 
하지만 이 모든게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이 여주군의 설명이다. 여주군은 천혜의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스쳐 지나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수계법 등 각종 규제에 철저히 막혀 여주군에는 관광숙박시설이라고는 콘도 1개가 전부다. 관광객을 붙잡으려해도 머물 곳이 없는 셈이다.
 
여주군의 지난해 총예산은 2천600억원이고 재정 자립도는 35%에 불과한 하위 수준이다. 예산에 쪼들리다보니 중기지방재정계획에 반영됐던 박물관건립, 군도 확포장사업, 도시계획도로건설 등 굵직굵직한 많은 사업들이 차질을 빚고 있으나 추가세원을 확보할 방안은 묘연하기만 하다.
 
그래서 여주군이 꺼내든 카드가 '골프특구'이다. 여주군은 지난 9월 지역경제의 균형발전을 위해 '골프레저산업특구' 지정을 신청했다. 여주군의 이같은 방침은 현재 운영중인 12곳의 골프장과 함께 세종대왕릉, 명성황후 생가, 신륵사 등 유명문화재 및 남한강 관광특수로 지역경제를 활성화 한다는 전략이다. 또 특구로 지정될 경우 숙박시설과 음식점 등의 신설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창선 여주군수는 “지금까지 여주군은 각종 규제로 훌륭한 문화 자원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활용하지 못했다”면서 “굴뚝없는 녹색산업을 키워 이제는 '스쳐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여주'로 만들 계획이다”고 밝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