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적어도 진짜 일자리 창출 '실용주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공공영역 비정규직 철폐를
'경제=사람 몸' 지역화폐는 모세혈관 살려내기
지난해 각종 악재 끝에 여배우 스캔들 등 정치적·사회적 파장이 가장 큰 혐의들을 벗은 후 "도정에 집중하겠다"고 밝힌 점과 맞물려있는 모습이었다.
오는 10일 직권남용·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첫 재판을 앞둔 가운데 그동안 공개 석상에선 상대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던 친형 강제입원 의혹 등에 대해서도 이날은 다소 장시간,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당초 주어진 시간을 훌쩍 넘기면서도 그는 질문 하나하나에 상세히 답했다.
■ "일자리, 숫자가 중요한 게 아냐"
지난해 지방선거 기간 전임 지사의 '일자리 70만개 창출 성과'를 "허구"라고 비판하기도 했던 이 지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일자리 60만개가 만들어졌다, 6만개가 늘었다고 한들 내 삶과 관계가 없으면 무슨 관심이 있겠나. '이만큼 늘어났다' 하고 보여줄 수는 있지만 숫자로 도민들에게 설명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10개의 일자리라도 진짜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공형 일자리라도 실질적으로 성과가 있는 일들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특히 지금은 청·장년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인데 노인 일자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공공형 일자리도 청·장년형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저성장 시대이니 많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에 참가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놔야 한다"며 각종 안전사고 위험에 대한 사전 조사를 실시하는 안전 관리 인력의 운용 확대 방안 등을 제시했다.
'김용균법' 제정으로 이어진 '위험의 외주화' 논란 및 비정규직 문제 등에 대해선 제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 지사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어야 한다는 게 제 입장이지만, 돈을 벌기 위한 민간기업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비정규직 제도를 활용하는 건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결국 제도가 중요하다. 모두 공평하게 안하도록 한다면 각 회사에서 비인간적인 체제를 굳이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경쟁 방안을 제시하고 설득하는 게 결국 국가와 공직자의 책무다. 공공영역에선 불필요한 비정규직은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올해부터 경기도 전역에서 본격 유통되는 지역화폐에 대해선 "경제는 결국 사람의 몸과 같다. 흐름을 잘 유지하고 한쪽으로 쏠리면 안된다. 피가 모세혈관까지 가야하는데 심장에만 몰려있으면 사지가 썩게 된다. 지금은 대동맥, 대정맥만 튼튼하게 되고 모세혈관이 점점 약해져서 죽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모세혈관에 피가 갈 수 있게끔 하는 방안을 만들어야 하는 때"라며 "지역화폐는 한 단계의 순환을 강제해 말단 모세혈관에 한번은 피가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지역상권, 동네 모세혈관들이 살아서 이런 게 필요 없는 건강한 시대가 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 지사의 방북 가능성 등에 초점이 맞춰졌던 북측과의 교류협력 문제와 관련해선 "방북 여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보다 실질적인 성과가 났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후 "축산업·산림 방재 등처럼 제재 대상이 아닌 부분들을 중심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대북사업 제재대상 아닌 축산업등 중심 협의중
합의된 규칙·법 지켜지게 하는 게 '최대 소망'
형 강제입원의혹 "일찍 치료했다면…" 안타까움
■ "합의된 질서·규칙 지키는 사회 만들어야"
각종 악재 속에서도 이 지사는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실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3위를 기록했다.
진보진영 주자 중에선 이낙연 국무총리의 뒤를 이어 2위를 점했다.
대선 도전 여부에 대한 질문에 이 지사는 "대선에 전혀 관심이 없다.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순식간에 불어왔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허망한 것. 거기에 관심 갖지 않으려 한다"고 선을 그었다.
지지도가 흔들리지 않는 점에 대해 그는 "대선과는 무관하다. 전혀 아니다"라고 거듭 손사래를 치며 뜸을 들이다 "진정성과 성과 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제 최대 소망,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합의된 규칙·법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것, 규칙·법을 지키면 손해는 안본다는 생각을 확실하게 만들자는 것인데 그런 점을 일부 인정해주는 것 같다"며 "또 저는 실용주의다. 시간 낭비를 싫어하고 형식·절차가 아닌 내용·결과를 중요시 한다. 불가능한 '큰 것'을 하려고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작은 것'을 많이 하려고 한다. 그런 점을 믿어주고 기대하는 분들이 작게나마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재판의 최대 관건인 친형 강제입원 의혹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최근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하던 환자의 흉기에 유명을 달리한 고(故) 임세원 교수를 거론한 그는 "개인을 원망할 게 아니고 환자를 진짜 보호하는 길이 뭔지 책임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 그런 점이 안타깝다. 왜 이렇게 악화되도록 방치하는지,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정신과 전문의가 위험하다고 판단할 경우 행정기관이 2주간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런데 강제 조치를 했을 때 (환자 측에서) 고소·고발이 이뤄지면 골치 아프니까 방치한 것이다. 초기에 진료받았으면 치료 받고 상황이 좋아졌을 사람들이 방치되니까 상황이 악화되는 것"이라며 "저는 실제로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재판을 받을 뿐 아니라 (형 재선씨와) 원수가 돼버렸다. 피를 나눈 형인데 가슴 아프지 않겠나. 일찍 발견해서 치료했다면 이렇게까지는 오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앞으로 이어질 법정 공방으로 도정 공백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전혀 시간을 뺏기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다행인 건 이미 도정에 중요한 흐름이나 방향, 정책들은 지난해 하반기에 거의 다 정리된 상태"라고 자신했다.
이 지사는 "도지사의 공약, 주요 정책은 2~3년에 걸쳐서 천천히 하는데 도의회의 도움, 도 공무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거의 다 확정된 상태다. 이제 결정된 정책들을 집행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게 주요 업무여서 차질이 빚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방의 결론에 대해선 "최선을 다해 설득하고 사실에 기초한, 진실에 입각한 결론이 날 것"이라며 "그게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지켜온 마지막 보루 아니겠나. 의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