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거문고 등 중세까지 주체적으로 외국과 문물 교류했던 선조들
개화기 들어 선진화 움직임에 일제 탄압… 전통 문화 설자리 빼앗겨
인천 중심으로 시작된 근대음악 전파, 희미해진 기록·흔적 되짚어봐
밀려드는 외래물결 자주적 수용 '해법' 100여년 역사속에도 고스란히

우리나라는 여러 번 외래음악을 수용했다. 고대에는 서역(西域) 음악을, 중세에는 중국 음악을, 19세기 후반 개항 이후에는 서양 음악과 접촉했다.
고대에는 불교가, 중세에는 유교가, 근대에는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외래 음악을 전하는 데 큰 몫을 했다. '문화는 종교라는 배를 타고 이동한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중세까지 우리의 음악 교류는 외래음악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음악을 창출한 경우로 볼 수 있다.
일례로 중앙아시아의 음악을 수용하면서 우리가 주체적으로 장구와 거문고를 창안했다.
인도 장단인 딸라(Tala)는 우리를 비롯해 중국과 인도네시아, 태국, 일본 등으로 유입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장단으로 분화했다. 우리 조상들은 외래음악을 수용하고 향악화하여 우리 것으로 만들고, 새로운 음악을 창조해냈다.
세종대왕은 '보태평'과 '정대업'이라는 궁중무용음악을 만들면서 외래음악인 고취악을 참조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백제의 기악(技樂)은 외래음악을 자주적으로 수용해 새롭게 창출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기악이란 가면을 쓰고 연행하는 것으로, 백제는 기악을 중국 오나라에서 들여와서 체화한 후 일본에 전한 바 있다.
근대에는 우리 음악과 체계와 사상적 기반이 완전히 다른 서양의 음악이 전래하면서 수용자에게 가해지는 파급력과 충격은 더욱 컸을 것이다.
또한 '서양의 것을 학습해 빠르게 선진화하려는 시대 정신'까지 가세하며 주체(반성)적 인식 없이 서양 음악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도 일조했을 것이다. 더해서 우리 고유의 것을 탄압한 식민지시기의 일제로 인해 우리 음악은 설 자리를 잃는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수학과 합리성이 극대화된 서양 음악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현상이 나타난 연유로 볼 수 있다.
개항 이후 서양 음악의 전래는 인천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무수한 서양의 문물이 인천을 통해 들어오는데, 단연 종교와 음악은 각별한 위치를 점한다.
하지만 인천의 음악 역사가 정리된 사례는 지금까지 없었다. 남겨진 자료들 또한 많지 않았다. 지역에서 대중음악 분야에 대한 관심은 그보단 나은 형편이다.
이 같은 인천의 가치와 함께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을 지난해 9월 마지막 주에 시작해 20회에 걸쳐 연재했다.

연재가 한창이던 지난 연말에 '그리운 금강산'을 작곡한 인천 음악인 최영섭(90) 선생 90세 축하 공연과 '장미헌정식'이 열려서 그 의미를 더했다.
공연장을 찾은 지역 인사들은 선생의 90세 축하와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장미 한 송이씩을 전달했다.
또한 작품을 정리하고 출판 작업을 진행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선생에게 후원금을 전달했다. '장미 헌정식'은 앞으로도 공로가 있는 선배와 원로를 기리고 모시는 인천의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가장 급격했던 인천에 전래한 서양음악과 공존해야 했던 우리 전통음악과 관련한 사건, 작품, 인물, 장소 등을 들여다 본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을 마무리 한다.
회차마다 각각의 주제에 따라 기술됐지만, 1편의 프롤로그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관통하는 주제는 '외래 문화(음악)의 자주(주체)적 수용'이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할 일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왔다. 에필로그에선 고민에 대한 답을 피력해야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민의 결과, 해답은 역사 속에 있었다. 이미 우리 선조들이 행하였던 것들이다. 단지 근대에는 외세에 의한 특별한 상황으로 인해 인지를 못했거나, 인지했어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외래 문화의 자주적 수용을 위해선 우선 우리 문화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자기 문화를 지나치게 비하해선 안되고 과대 포장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처럼 자신을 잘 알기 위해선 주위의 것과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약점과 장점을 분명히 알 때 외래 문화를 자주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