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군인 꿈꾸던 체육학도, 대학 졸업 전 경안상호신용금고 입사
10년차 사표내고 개인 사업… 녹록지 않자 지금의 경기신보 '인연'
무슨 기관인지 설명했었던 시절, 전단지 붙이고 상인회 찾아다녀
직원 출신 수장 매너리즘 빠질 수 있는 우려 '새로움' 좇으며 불식
보증료 면제 '다드림론' 등 준비… 中企·소상공인들 곁에 있을 것
지난해 11월 이민우 당시 경기신용보증재단(이하 경기신보) 영업부문 상근이사가 이사장 후보로 낙점됐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됐던 말이다.
다만 신화는 저절로 쓰이지 않았다.
늘 새로운 길을 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할 때도, 미래를 알 수 없는 신생 기관에 입사했을 때도, 갖은 풍파 속 임·직원이 18명에 불과했던 작은 조합을 경기도 최대 산하기관으로 성장시키며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도 그랬다.
경기도·전국 지역신용보증재단 첫 직원 출신 이사장이 그인 이유일 터다.
9일, 그가 이사장에 취임한 지 꼭 100일이 됐다. 100일간의 걸음도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가보지 않은 길을 열었고, 맨 앞에는 이 이사장이 서 있었다.
지난 4일 이 이사장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걸어온 길을 되짚을 때보다 닦지 않은 길을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더 힘이 실려있었다.
# 문견이정
직업군인을 꿈꾸던 체육학도였다. 금융기관에 발을 들인 것은 차라리 우연에 가까웠다.
대학교를 졸업하기도 전 첫 직장인 경안상호신용금고에 입사했다. 낮에는 상호신용금고 대리로, 밤에는 대학생으로 20대 후반을 보냈다.
30대 중반, 가장 왕성하게 직장 생활을 할 10년차에 문득 사표를 냈다. 정치든, 사업이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 작은 개인 사업을 시작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회사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으며 살면 안 되냐"는 가족들의 애원이 들릴 무렵, 지인이 이력서를 함께 내보자고 했다. 당시엔 '조합'이었던 지금의 경기신보였다.
전국에서 제일 먼저 생긴 지역신보인 만큼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왜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는 기업인·상공인은 손에 꼽았다.
이사장, 감사, 팀장, 대리를 합해도 18명밖에 되지 않았던 작은 기관의 불이 365일 꺼지지 못했던 까닭이기도 했다.
"맨 처음 생겼을 때는 뭐하는 기관인지 다들 잘 모르니까, 전단지도 붙이고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인회를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이런 기관이 생겼고, 이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알려야 했다. 법조차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 등 아무 것도 없으니 발로 뛸 수밖에 없었던 때"라고 경기신보 창립 당시의 모습을 언급한 그는 "경기북부 전체를 담당했었는데 '지점'이 없을 때라 차 한 대로 그 넓은 북부를 다녀야 했다. 펜 하나조차 사기 힘들었던 시기라 출장비도 1만원 정도였는데 톨게이트 비용으로만 6천원을 냈었다. 한 번은 무더운 여름이었는데 파주까지 갔다가 업체에서 보증서류를 반송시켜서 뙤약볕 아래 걷고 또 걸은 기억도 있다. 초창기 멤버들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후 경기신보의 첫 지점 격인 의정부사무소를 입사 1년 만에 도맡았고, 5년 만에 서부지점(현 부천지점)을 총괄하게 됐다.
아무 것도 없는 땅에 처음 길을 낼 때의 막막함은 그 후로도 숱하게 되풀이됐지만, 번번이 현장에서 답을 찾아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대리부터 이사장이 된 지금까지,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문견이정(聞見而定·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들은 이후 싸울 방책을 정한다)'이라는 말이 딱 맞았다"고 회고했다.
# 다시, 새 길
직원 출신 수장의 최대 강점이자 약점은 조직을 잘 안다는 점이다.
빠르게 조직을 장악하며 수장 교체에 따른 혼선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반면, 익숙한 방식만을 답습하는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을 터. 적어도 100일간의 행보에서 이 이사장은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좇기 위해 애썼다.
현재 준비 중인 '다드림(多-dream)론'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약자, 저신용등급 소상공인 등에 보증료를 100% 면제해주는 상품으로, 취임 직후부터 출시를 적극 검토해 왔던 것이다.
보증기관이 보증료를 받지 않는, 전국 보증기관 최초의 시도다. 많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일반 금융기관의 문은 두드릴 수 없는 금융 소외계층들이 불법 대부업에 손을 대 더욱 수렁에 빠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는 이재명 도지사의 생각과도 맞닿아있는 행보이기도 하다.
이 이사장은 "많은 돈은 아니더라도 당장 자금이 필요한데 보증지원을 받기가 어렵고, 보증을 받더라도 보증료와 대출 금리 때문에 부담을 느끼는 저신용자, 사회적 약자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더 큰 어려움에 빠지거나 경제 활동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재도전 희망특례 보증'을 통해 사업에 실패해도 재기할 수 있는 자금 50억 원 규모를 지원하고, 금융 취약계층들을 위한 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를 기존 7개에서 12개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또 중소기업·소상공인들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안성·하남에 영업점을 신설하는 한편, 중부지역본부를 개설할 예정이다. 특례시가 될 수원·고양·용인 등 100만 명 이상 도시에는 지점을 1개씩 추가 조성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그야말로 광폭 행보다.
이 이사장은 "이사장이자 선배로서, 후배 직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결국 경기신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재단을 찾아주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라며 "경기신보가 짧은 기간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전국 최대 광역단체인 경기도에 많은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있고, 이들이 우리를 필요로 해서다. 그런 중소기업, 소상공인들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기관을 만드는 게 제가 해야 할 가장 큰 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말미 명패에 적힌 이름의 한자가 눈에 띄어 물었다.
백성 민(民), 비 우(雨).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자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이로운 일을 하라는 뜻에서 지어주셨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뭄 끝 단 비처럼,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경기신보 본연의 역할과 절묘하게 맞닿아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금융인으로서 33년, 경기신보에서 23년.
메마른 땅을 적셔 처음 길을 내왔던 그가 앞으로의 100일, 그리고 또 다른 100일 뒤 서 있을 곳 역시 함께 궁금해졌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이민우 이사장은?
▲ 1979년 유신고등학교 졸업, 2001년 숭실대학교 경영학 석사 취득
▲ 1985~1995년 경안상호신용금고 근무
▲ 1996년 경기신용보증재단 입사
▲ 2001~2005년 경기신용보증재단 부천지점장 / 총무팀 부장
▲ 2006~2010년 경기신용보증재단 안양지점장 / 기획부 실장
▲ 2010~2014년 경기신용보증재단 기획관리본부장 / 성남지점장
▲ 2014~2015년 경기신용보증재단 남부지역본부장
▲ 2015~2018년 경기신용보증재단 영업부문 상근이사
▲ 2018년 12월 ~ 경기신용보증재단 제14대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