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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사의 후손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남편 하상기의 제적등본. /김용택씨 제공

조카손자 김용택씨 경인일보 통해
남편 하상기씨의 '제적등본' 공개
"본관마저 잘못 알려져 바로잡고자"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스승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김란사가 재조명되고 있다.

인천과 깊은 관련이 있는 그는 한국의 첫 여성 '문학사' 학위자, 첫 여성 대학교수, 고종의 통역사, 파리국제강화회의 밀사 등 여성교육과 독립운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하지만 출생 연도, 사망일과 사망장소, 집안, 본관 등 기본적인 인물정보조차 각종 기록이나 글마다 제각각일 정도로 김란사 연구가 깊이 있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김란사의 조카손자인 김용택(71)씨가 김란사의 남편 하상기(1855~1920)의 제적등본(옛 호적등본)을 지난해 확보하고, 8일 경인일보를 통해 처음으로 공개했다.

인천감리 등을 지낸 관료였던 하상기의 제적등본에 나타난 아내(妻) 김란사는 1872년(개국 481년) 9월 1일생이다. 기존에는 '1875년', '1868년', '1872년' 등 세 가지 추측이 혼용됐다.

김란사는 1919년 중국 베이징에서 숨을 거뒀는데, 사망일은 당시 언론보도나 보고서에 따라 '4월 10일', '3월 10일', '3월 11일', '3월 상순' 등으로 여러 가지로 써 왔다.

등본에서는 사망일을 3월 10일 오전 11시로 명확히 기재했고, 사망장소는 베이징 '부영병원'이라고 밝히고 있다.

본관은 상당수 기록에서 밝힌 '김해 김씨'가 아닌 '전주 김씨'였다. 하상기와 김란사 사이에는 딸 하나가 있었다.

일부 구술에 의해 이름은 자옥(子玉)이고, 이화학당에 재학 중 18세(또는 19세)에 사망했다는 내용이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제적등본에는 딸의 이름은 원옥(媛玉)으로 24세에 세상을 떴다고 기록돼 있다. 제적등본이 공문서인 만큼 현재로선 가장 객관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김란사애국지사기념사업회 회장인 김용택씨는 하상기의 직계가족은 아니지만, 국가보훈처와 행정안전부 등의 협조로 지난해 7월 제적등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김용택씨는 "심지어 조상의 본관마저 틀리는 글들이 여럿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제적등본을 요청해 받았다"며 "앞으로 김란사 할머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들이 쓰이길 바란다"고 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