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생과 나이차 얼마나지 않아
"무사히 돌아왔을까" 생각하기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보낸 인천송현초등학교 제자들을 찾고 있는 송현초 교사 출신 와카타니 노리코(94·여)씨는 1929년 만 4살의 나이에 조선으로 건너와 해방 때까지 머물렀다.
아들 와카타니 마사키(70)씨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노리코씨는 조선총독부로부터 순사로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조선에 온 4남매 중 맏이다.
노리코씨 일가는 인천 부평지역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1934년까지 경기도 경찰부 위생과 소속이던 노리코씨의 아버지는 이때부터 일본에서 얻은 교사자격을 활용해 부평공립보통학교(현 인천부평초), 인천소화동국민학교(현 인천부평동초) 등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노리코씨 역시 인천에서 자랐다. 인천소화동국민학교 등을 다닌 그는 1938년부터 인천공립고등여학교(현 인천여고)에 다녔고, 이후 1942년 경성여자사범학교(현 서울대 사범대학)에 입학했다.
교원 과정을 마치고 교사가 된 노리코씨는 만 19세인 1944년 인천송현초등학교 6학년 학급의 담임으로 부임했다. 당시 국민학교 6학년 학생들의 나이가 12~16세로 다양했던 점을 고려하면, 학생들과의 나이 차이는 많지 않았다.
그는 같은 해 9월 자신이 맡은 학급의 학생 60여명 중 7명을 일본 도야마현의 후지코시 공장으로 보냈다. 교사로서 처음 맡은 학생들을 일본으로 보냈다고 한다.
가족들은 노리코씨가 동원 이후 '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왔을까'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한다.
노리코씨의 아버지는 1941년 현재 미얀마인 '버마'로 징용돼 1945년 전투 중 사망했다고 한다. 노리코씨 가족은 1945년 8월 해방 후 같은해 11월 일본으로 귀국했다.
노리코씨의 가족들은 그가 조선에서의 삶을 특별하게 여겼다고 얘기한다.
아들 마사키씨는 "어머니가 조선에서 교사를 할 때 학생들이 집을 찾아와 함께 놀기도 하고, 할머니가 떡도 해주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청춘을 보낸 조선에 대해 각별하게 얘기하신다. 사진도 평생을 간직하고 계셨다"고 말했다.
도쿄/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