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협상에서 미국측 실무를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4일(현지시간) 오랜만에 공개강연에 나섰다. 하지만 발언 전체에 대한 '비보도'(오프더레코드)를 요청하는 등 '로키 모드'를 이어가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북한의 두 차례 미사일 발사 등으로 인해 북미 간 교착의 장기화 조짐이 나타나는 상황에서 협상 실무대표의 공개발언이 가져올 파장 등을 감안,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한동안 공개석상에서 자취를 감춘 북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재등장, '건재'를 과시하긴 했지만, 자신의 카운터파트였던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의 신변이상설이 제기되는 등 여러 가지로 예민한 국면에서 말을 아끼며 '상황관리'를 하려는 차원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지난 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일명 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하고 돌아온 비건 특별대표는 이날 워싱턴DC에서 한미경제연구소(KEI)가 개최한 '2019년 한반도의 안보적 도전:평화와 안정 전망'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 '한반도의 안보 및 통일 이슈'를 주제로 오찬 강연을 했다.

이날 행사에는 KEI 소장인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미국대사와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 사령관을 비롯, 한반도 전문가들이 참석했으며 국무부에서는 마크 내퍼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대행이 자리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10여일 후인 지난 3월 11일 카네기 국제평화기금이 주최한 콘퍼런스 좌담회에 참석, 북한에 '대화 지속' 메시지를 보낸 바 있으나 이후 세달 가까이 공개석상에서는 발언하지 않았다.

북한의 지난달 두 차례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 미국이 여전히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는 가운데 북미협상의 미국 측 실무대표가 북한의 궤도이탈을 막고 다시 협상테이블로 견인하기 위해 어떠한 메시지를 발신할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에서다.

그러나 이날 강연 및 뒤이은 일문일답 일체는 비건 특별대표의 요청에 따라 비보도를 전제로 이뤄졌다. 공개강연이 비보도를 전제로 진행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예정보다 20분 가량 늦은 오전 11시 50분께 행사장에 도착한 비건 특별대표는 '싱가포르 샹그릴라 대화가 어땠냐'는 질문에 미소를 지은 채 "멋졌다(it was lovely)고 말했다.

그러나 김혁철 특별대표 관련 보도를 포함, 현안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는 일절 언급을 자제했다. '북미간 대화가 진행 중이냐'는 등의 물음에도 "오늘은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않겠다", "코멘트하지 않겠다"고만 했다.

질문공세가 이어지자 자신을 맞으러 1층 로비에 내려온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을 가리켜 "내 친구 맥스웰씨의 길을 막지 말라"며 엘리베이터에 탄 뒤 행사장으로 향했다.

비건 특별대표는 1시간가량 진행된 강연 및 일문일답이 끝난 뒤에도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은 채 행사장을 떠났다.

앞서 비건 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한미일 북핵 협상 수석대표 회동을 했을 때에도 기자들의 질문에 "노코멘트"라며 말을 아꼈다. 지난달 9일 북한이 두번째 미사일 발사가 이뤄졌을 당시 방한 중이었던 그는 당초 예정됐던 약식 기자회견을 취소했고, 같은 달 20일 방미의원단과의 면담에서도 구체적 대화 내용에 대한 '보안'을 요청한 했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김혁철 특별대표의 처형설 관련 보도에 대한 질문에 "모른다"고 말했다고 CNN방송이 지난 1일 보도한 바 있다. /워싱턴=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