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훈 사진2
권성훈 시인 /실천문학 제공

눈에 보이는 모습, 집착하지 않고
그 너머의 의미 해학·은유적 표현


권성훈 책
그의 삶은 참으로 '파란만장' 하다.

가정 형편으로 공업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서는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공을 찾아가지 않고, 전혀 다른 길인 '로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거기서 틈틈이 글을 써 오면서 2002년 '문학과의식'에서 시로, 2013년 '작가세계'에서 평론으로 등단하여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문단에 발을 내밀었다.

이후 문학에 매진하면서 경기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고려대학교에서 박사후(Past-doc) 과정을 밟았다.

문학평론가와 시인으로 활동하면서 대학교수의 자리에 올랐는데,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있던 정신분석과 시치료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을 발표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문학이라는 길을 탄탄히 걸어온 듯 보이지만, 그는 '낯을 많이 가리는' 문단과 대학에서 '외부인'이란 불리함을 지독스러운 열정과 실천력으로 극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그의 삶을 놓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드는 것은, 인생에 대한 '모험'과 문학에 대한 '열정' 때문이다.

그렇게 걸어온 삶의 궤적 속에 얼마나 많은 일들을 겪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났으랴. 7년 만에 펴낸 세 번째 시집 '밤은 밤을 열면서'(실천문학 시선 펴냄)는 권성훈 시인의 그런 삶의 궤적을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다.

권 시인은 꽤 오랫동안 몸을 담았던 로펌에서 시작된 인연으로 애증과 사건, 사고로 뒤엉킨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지금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의 '조정위원'이라는 흔치 않은 직함도 갖고 있기도 하다.

'한여름 설렁탕집에서 마지막 밥알을 건져 올리는데/맞은편 노인이 뚝배기같이 금이 간 정오에 무릎을 꿇고 있다/평생 농사일로 검게 탄 눈을 껌벅이다가/장마 전선에도 쑥쑥 자란 암소 한 마리 팔아 와서/사고 쳐 징역 간 손주 녀석 한 번만 살려 달라 애원한다…'(21~22쪽 '남은 이유' 중에서)

권 시인은 2012년에 펴낸 두 번째 시집 '유씨 목공소'에서 살인마 유영철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 파격적인 문학적 이탈을 시도 했다.

그리고 '시치료의 이론과 실제', '폭력적 타자와 분열하는 주체들', '정신분석 시인의 얼굴' 등의 저서를 통해 범죄심리학과 정신분석을 문학과 접목하는 독특한 연구를 계속하기도 했다. 역시 시인의 독특한 이력과 집중력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이다.

하지만 권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59편의 작품에서는 한걸음 물러나 살펴보는 '여유'를 선보인다. 눈에 보여지는 겉모습에 집착하지 않고 내면 혹은 그 너머를 살펴보거나, 숨어있는 의미를 은유적·해학적으로 표현한 '무르익은' 시편들이다.

평론가인 서울대 방민호 교수는 서평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장면들에 주목함으로써 삶의 모순과 부조리함을 그만의 방식으로 그려낸다"며 권 시인이 독특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음에 주목했다. 그것은 시인이 굴곡진 삶을 통해 단련된 자신만의 '명상적 사유'를 갖고 있다는 의미다.

/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