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작년 10월 이후 잇따랐던 한국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 화해치유재단 해산, 레이더 조사(照射) 논란 등을 양국 간 신뢰 훼손 사례라며 이를 빌미로 한국에 대한 수출통제 강화에 나선 가운데 일본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커지고 있다.

집권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주요 국정 선거의 하나인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양국 국민감정을 자극할 수 있는 카드를 꺼내든 것을 놓고도 일본 언론의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 일본 내 '한국의 탈(脫)일본화' 우려 목소리

아사히신문은 5일 2010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 분쟁 당시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희토류 수출규제를 가했던 사례를 들면서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가 반도체 소재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탈일본화를 가속하는 계기가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의 당시 희토류 수출규제는 스마트 폰, 에너지 절전형 가전, 차세대 자동차 등 일본의 첨단 기술 제품 생산에 영향을 미쳤고, 일본 기업들은 중국 의존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기술 개발을 진행했다.

그 결과로 혼다자동차의 경우 이제는 희토류 조달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의 모터 기술을 확보한 상황이 됐다고 한다.

자동차는 고온에서도 모터의 자석 성능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희토류를 사용한다. 혼다는 2012년 철강업체인 다이도(大同)특수강과 희토류 사용량을 줄이는 연구개발을 시작해 2016년 전면 개량한 차종에 희토류인 '디스프로슘'을 사용하지 않는 자석을 채용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 2월 희토류 '네오디뮴' 사용량을 최대 50% 줄여도 종래의 성능을 확보할 수 있는 자석을 공개했다. 이 자석은 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국의 수출규제 여파로 일본 수요 기업들은 거래처의 다변화도 추진했다.

이에 따라 일본의 희토류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2010년 80%에서 2017년에는 60%까지 떨어졌다.

아사히는 일본 정부의 한국 수출규제 강화로 한국 정부가 향후 반도체 소재를 포함한 첨단 소재 등의 개발에 약 6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며, 한국의 기술 개발과 조달처의 다양화가 진행되면 세계시장에서 일본의 우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마이니치신문도 한국이 단기적으로는 다른 곳에서 조달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자국 생산을 통한 '탈(脫)일본화'에 주력해 일본의 기술적 우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 일본상공회의소 회장도 한국이 일본에 의존하던 일부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점을 거론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 큰손 거래처 잃게 된 日 기업 전전긍긍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을 주요 거래처로 둔 일본 기업들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조치가 강화된 첫날인 4일부터 수출 계약 신청을 서두르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이르면 1개월 정도 후면 일부 소재의 한국 기업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면서 반도체와 유기EL 패널 생산이 영향을 받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번 규제로 3년에 한 번 정도 이뤄지던 한국 수출품에 대한 포괄적인 신청·승인 절차가 수출계약 건별로 진행되면서 신청서류 작업량이 크게 늘게 된다.

신청 후에 수출 허가 여부가 결정되는 심사 기간은 90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점을 고려해 해당 기업은 조기 수출허가를 신청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허가 여부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규제가 강화된 첫날에 주무 부처인 경제산업성에 일부 기업이 수출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수출규제 카드를 꺼내든 만큼 정부의 의중에 따라 허가 여부가 결정될 공산이 커 결과를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수출규제 대상인 에칭가스 제조업체인 스텔라케미화는 연간 200억엔대 매출을 올리는 반도체 액정사업의 일부가 규제 대상에 포함됐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될지 예측할 수조차 없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주력품으로 생산해 절반 정도를 한국으로 수출하는 모리타화학공업은 가능한 한 조기에 수출허가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산케이신문에 "어느 정도의 증명서류가 필요한지 확인하고 있다"면서 허가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면 실적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1차 규제 대상인 3개 품목 중 일본이 한국으로 가장 많이 수출하는 것은 리지스트로, 이 품목의 한국 수입액은 올해 1~5월 1억 달러 규모였다.

리지스트 공급업체인 도쿄오카공업은 "어떤 영향이 나타날지 모르겠다"며 당혹해 하고 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 예고된 제2탄 규제…반도체 외 분야로 불안 확산

일본 정부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외에 경제산업성 판단으로 수출계약 별로 심사를 받도록 요구하는 '비목록(포괄) 규제'를 내달 중 시행하기 위한 외환법 시행령 개정절차를 밟고 있다.

이 개정안의 골자는 일본 정부가 안보·신뢰 관계를 토대로 이른바 '화이트 국가'(백색국가)로 지정해 수출절차를 간소화해 주던 혜택을 없애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등 27개국이 올라 있는 '화이트 국가' 리스트에 2004년 포함된 한국을 대상 국가 중 처음으로 뺄 예정이다.

한국이 이 리스트에서 제외되면 화학소재, 전자부품, 공작기계 등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출하는 물품 중 상당수가 안보문제를 이유로 일본 정부의 작위적 판단에 따라 건별 수출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닛케이신문은 공작기계 업체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수출업체 사이에서도 향후 추가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등 다른 산업에도 불안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 참의원 선거 겨냥한 '카드' 비판 여론

아베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7월 1일 수출규제 강화책을 발표하고 참의원 선거가 고시된 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것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일본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의 강경 자세 배경에는 한국에 엄격하게 대하는 것으로 참의원 선거에서 순풍을 타고자 하는 아베 정권의 의도가 엿보인다"며 "집권 자민당 간부가 후보자들에게 유세 연설 때 수출규제 강화를 언급하도록 조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는 한국 측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합의를 백지화하고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를 계속하는 것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이 강경한 상황이어서 한국을 겨냥한 수출규제가 지지를 받을 것으로 자민당은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강경한 국내 여론을 바탕으로 대립을 심화시켜 양국 관계가 악화하는 데 제동이 걸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도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