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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5월 14일 경북 경주시 안강읍에 있는 옥산서원 강당에서 본 서원 풍경. 정면에 보이는 누각이 무변루다. /연합뉴스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지난 6일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안동 병산서원과 경주 옥산서원은 세계유산 2관왕이 됐다.

두 서원은 지난 2010년 안동 하회마을, 경주 양동마을 등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이란 명칭으로 그것을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세계유산이 됐다.

한국의 대표적 씨족마을인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전통적 공간 구성을 오랫동안 유지했고, 살림집은 물론 정자와 서원 등을 보유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 씨족마을은 하나 혹은 소수 씨족이 주민 다수를 차지하거나, 의사결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다.

병산서원(屛山書院)과 옥산서원(玉山書院)은 각각 하회마을, 양동마을에서 거리가 10㎞가 되지 않는다. 두 서원이 배향한 주요 인물인 서애 류성룡(1542∼1607)과 회재 이언적(1491∼1553)은 각각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에 거주했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과 입지적 특성이 유사하다.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화산(花山)이 있다. 류성룡이 1572년 풍산류씨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을 서원 자리로 옮겼고, 후학들이 1613년 서당 뒤편에 류성룡을 모신 사당인 존덕사(尊德祠)를 지으면서 서원이 됐다. 사액은 건립 250년 뒤인 1863년에야 이뤄졌다.

병산서원은 '서애선생문집'과 '징비록'을 간행했고, 류성룡 저술 일부는 일본에까지 보급됐다.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은 병산서원 특징으로 교육기관으로 기능했을 뿐 아니라 사림 공론장으로도 활용됐다는 점을 꼽았다. 병산서원은 17세기 이후 유생들이 연명한 상소인 유소(儒疏)를 수차례 조정에 올렸고, 통문을 만들었다.

서원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만대루(晩對樓)는 기둥 36개가 마루를 받친 형태다. 다듬지 않은 주춧돌 위에 세운 기둥은 크게 가공하지 않아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누마루에 오르면 노송과 백사장, 낙동강과 병산이 이룬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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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했다고 지난 5월 14일 밝혔다. 사진은 지난해 8월 배롱꽃 핀 안동 병산서원의 모습. /연합뉴스

서원 정문 너머에 이 같은 누마루를 세우는 전통은 옥산서원에서 시작됐다. 옥산서원에는 만대루와 같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인 무변루(無邊樓)가 있다. 무변루는 외부와 내부 경관을 연결하고, 강학 공간과 유식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작은 시내인 자계천이 휘돌아가는 경사지에 있는 옥산서원은 1572년에 건립했다. 그해에 사우인 체인묘(體仁廟)와 강당 구인당(求仁堂)을 지었고, 무변루는 이듬해 세웠다. '옥산'(玉山)이라는 사액은 1574년에 받았다.

옥산서원은 출판과 자료 소장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지난해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 완질을 오랫동안 보관했고, 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인 '사마방목' 등이 보물로 지정됐다. 1835년에는 목판을 소장하는 문집판각(文集板閣)을 조성했다.

아울러 병산서원처럼 지역 사림 공론을 주도했는데, 19세기 말에는 조정이 추진한 근대화 정책에 반발해 8천849명이 서명한 만인소를 만들기도 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