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최초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으로 16일(현지시간) 선출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60)은 독일의 첫 여성 국방장관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최근 자국 내 정치적 입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EU를 이끄는 '수장'으로 우뚝 서는 예상치 못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폰데어라이엔은 영국 런던 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독일 하노버 의대에 진학해 의학박사를 받았다.
애초 독일 중부 괴팅겐대에 진학한 폰데어라이엔은 극좌 테러단체인 적군파(RAF)의 납치 표적이 되면서 가명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버지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가 중도 우파 정치인으로 니더작센주 총리를 지내고 있던 탓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겸 의대 교수로 일하던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중도보수 기독민주당 소속으로 니더작센주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아버지의 후광 속에서 승승장구한 폰데어라이엔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발탁돼 2005년 가족여성청년부 장관을 맡으며 40대 중반에 화려하게 중앙 정치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며 체급을 한 단계 올렸다.
2013년 12월에는 독일에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을 맡아왔다.
그는 전날 유럽의회의 집행위원장 인준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장관직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시 의사 출신이어서 보건부 장관에 유력 후보로 언급됐던 폰데어라이엔은 메르켈 총리와 담판해 보건부 장관을 맡기면 새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배짱'을 보였다.
폰데어라이엔은 7명의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인준투표 전 다산을 한 여성 후보라는 점이 득표전에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는 7남매의 어머니답게 저출산 문제에 팔을 걷어붙여 한때 '저출산 파이터'로 명성을 날렸다.
남성의 2개월 유급 육아휴직 제도 등을 밀어붙였다.
출산 증가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한때 기민당 내 진보파로 분류되기도 했다.
의사인 남편이 자녀 양육을 주로 책임져왔는데, '워킹맘'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폰데어라이엔이 전업주부로 지낸 기간은 남편이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던 4년여 정도다.
특히 그는 대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 할당제와 최저임금제 등 중도진보의 사회민주당이 주장한 정책을 메르켈 총리의 반대 속에서 밀어붙였다.
노동부 장관 당시 직원들에게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근무시간 외에는 연락하지 말도록 하는 등 근로자들의 '웰빙'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런 기조는 국방부 장관을 맡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는 모토로 사병 복지에 신경을 썼다.
국방부 장관을 맡으면서 메르켈 총리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한명으로 꼽혀왔다.
메르켈 총리는 폰데어라이엔의 국방부 장관 내정을 발표하며, "사회정책과 국제문제에 관심을 둬왔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데, 국방부 장관을 맡는 것은 좋은 조합이 될 것"이라며 두터운 신임을 보였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은 2017년 총선 이후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연방군 내 장비 부족과 부실, 모병 부족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더구나 연방군 내 극우주의자의 활동 문제, 신병 모집 시 무리한 홍보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특히 최근에는 해군 훈련함 정비와 관련해 국방부 차관이 고임금의 고문들을 고용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폰데어라이엔은 연방하원의 조사위원회에 몇 달 안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이런 탓인지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직전에는 메르켈 총리가 선거 후 개각을 단행할 경우 개각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이 언론에서 나왔지만, 예상과 달리 EU 집행위원장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폰데어라이엔은 아버지가 EU 집행위원회 관료일 당시 벨기에 브뤼셀 교외에서 태어나 13세에 독일로 이주했다.
그 덕분에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그를 추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인연도 능통한 프랑스어가 바탕이 됐다.
/손원태 기자 wt2564@kyeongin.com
그는 최근 자국 내 정치적 입지가 줄어든 상황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EU를 이끄는 '수장'으로 우뚝 서는 예상치 못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폰데어라이엔은 영국 런던 정경대(LSE)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독일 하노버 의대에 진학해 의학박사를 받았다.
애초 독일 중부 괴팅겐대에 진학한 폰데어라이엔은 극좌 테러단체인 적군파(RAF)의 납치 표적이 되면서 가명으로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아버지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가 중도 우파 정치인으로 니더작센주 총리를 지내고 있던 탓이었다.
산부인과 의사 겸 의대 교수로 일하던 그는 정치인으로 변신해 중도보수 기독민주당 소속으로 니더작센주 지방의회에 진출했다.
아버지의 후광 속에서 승승장구한 폰데어라이엔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발탁돼 2005년 가족여성청년부 장관을 맡으며 40대 중반에 화려하게 중앙 정치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며 체급을 한 단계 올렸다.
2013년 12월에는 독일에서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국방부 장관을 맡아왔다.
그는 전날 유럽의회의 집행위원장 인준투표 결과와 관계없이 장관직에서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당시 의사 출신이어서 보건부 장관에 유력 후보로 언급됐던 폰데어라이엔은 메르켈 총리와 담판해 보건부 장관을 맡기면 새 내각에 참여하지 않겠다며 '배짱'을 보였다.
폰데어라이엔은 7명의 자녀를 출산한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인준투표 전 다산을 한 여성 후보라는 점이 득표전에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는 7남매의 어머니답게 저출산 문제에 팔을 걷어붙여 한때 '저출산 파이터'로 명성을 날렸다.
남성의 2개월 유급 육아휴직 제도 등을 밀어붙였다.
출산 증가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한때 기민당 내 진보파로 분류되기도 했다.
의사인 남편이 자녀 양육을 주로 책임져왔는데, '워킹맘'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도록 이 같은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폰데어라이엔이 전업주부로 지낸 기간은 남편이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았던 4년여 정도다.
특히 그는 대기업 이사회 내 여성 비율 할당제와 최저임금제 등 중도진보의 사회민주당이 주장한 정책을 메르켈 총리의 반대 속에서 밀어붙였다.
노동부 장관 당시 직원들에게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근무시간 외에는 연락하지 말도록 하는 등 근로자들의 '웰빙'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런 기조는 국방부 장관을 맡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는 모토로 사병 복지에 신경을 썼다.
국방부 장관을 맡으면서 메르켈 총리의 유력한 후계자 중 한명으로 꼽혀왔다.
메르켈 총리는 폰데어라이엔의 국방부 장관 내정을 발표하며, "사회정책과 국제문제에 관심을 둬왔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는데, 국방부 장관을 맡는 것은 좋은 조합이 될 것"이라며 두터운 신임을 보였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은 2017년 총선 이후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연방군 내 장비 부족과 부실, 모병 부족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더욱 줄어들었다.
더구나 연방군 내 극우주의자의 활동 문제, 신병 모집 시 무리한 홍보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특히 최근에는 해군 훈련함 정비와 관련해 국방부 차관이 고임금의 고문들을 고용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폰데어라이엔은 연방하원의 조사위원회에 몇 달 안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했다.
이런 탓인지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직전에는 메르켈 총리가 선거 후 개각을 단행할 경우 개각 명단에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이 언론에서 나왔지만, 예상과 달리 EU 집행위원장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폰데어라이엔은 아버지가 EU 집행위원회 관료일 당시 벨기에 브뤼셀 교외에서 태어나 13세에 독일로 이주했다.
그 덕분에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그를 추천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인연도 능통한 프랑스어가 바탕이 됐다.
/손원태 기자 wt2564@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