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연구단체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고급 리무진이 반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로를 추적해 그 결과를 공개했다.

유엔 대북제재 결의는 고급 리무진을 사치품으로 분류해 북한으로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6일(현지시간) 비영리 연구단체인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의 '북한의 전략적 조달 네트워크 노출' 보고서를 토대로 리무진 반입 경로 등에 관해 보도했다.

◇ '김정은 벤츠' 어떻게 평양까지 갔나

선진국방연구센터의 추적 결과에 따르면 방탄 전용차로 보이는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2대는 지난해 6∼10월 4개월 동안 5개국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추정됐다.

이들 차량을 적재한 컨테이너가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구에서 출발해 중국 다롄, 일본 오사카와 한국 부산항, 러시아 나홋카까지 선박으로 옮겨진 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화물기를 통해 북한으로 최종 반입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항구에서 대당 50만달러에 달하는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2대가 2개의 컨테이너에 각각 적재된 시기는 지난해 6월이다.

차량을 처음에 누가 구매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차이나 코스코시핑' 그룹이 운송을 맡았다.

컨테이너는 41일간의 항해를 거쳐 7월 31일 중국 다롄 항에 도착했고, 하역 이후 8월 26일까지 다롄 항에 머물렀다. 이후 컨테이너는 다시 화물선에 실려 일본 오사카를 거쳐 9월 30일 부산항에 도착했다.

컨테이너는 부산항에서 토고 국적 화물선 'DN5505'호로 옮겨져 러시아 나홋카 항으로 출발했다.

컨테이너 운송 위탁책임은 DN5505호의 선주인 '도영 쉬핑(Do Young Shipping)'이 맡았다. 마셜제도를 국적으로 하는 것으로 알려진 '도영 쉬핑'은 대북제재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은 파나마 선적 석유제품 운반선 '카트린호'의 소유주다.

그러나 DN5505호는 18일간 종적을 감췄다. 10월 1일 부산항을 출항한 뒤 자동선박식별장치(AIS)를 끈 것이다. AIS 차단은 제재 회피 선박들이 추적을 피하기 위해 이용해온 전형적인 수법이다.

DN5505호가 AIS를 다시 켰을 때는 한국 영해 내에 있었다. 선박은 2천588t의 석탄을 적재하고 있었다. 

세관 자료에는 DN5505호가 나홋카 항에서 석탄을 적재했다고 기재된 것으로 전해졌다.

DN5505호의 '종적 감추기'로 차량의 행방이 다소 묘연해진 상황이 된 것이다.

NYT와 WSJ은 C4ADS 보고서와 연구진을 인용, 마이바흐 S600 차량 2대가 비행편으로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10월 7일 북한 고려항공 소속 3대의 화물기가 나홋카 항에서 멀지 않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는데, 메르세데스 차량이 이들 화물기를 통해 북한으로 수송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NYT는 고려항공 소속 화물기가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한 것은 이례적이고, 이들 화물기는 김 위원장의 해외 순방시 김 위원장의 전용차를 운송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선진국방연구센터의 루카스 쿠오 선임 분석가는 당시 북한 화물기가 러시아에 도착한 것은 '묘한 우연의 일치'를 넘어선다고 말했다고 WSJ는 전했다.

컨테이너선에 적재됐던 것과 같은 기종의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S600 차량은 올해 1월 31일 평양 노동당 청사로 이동하는 것이 포착됐고, 당일 김 위원장의 예술 대표단 사진 촬영에서 같은 차량이 등장했다고 NYT는 전했다.

◇ 사치품 수출 추정액은 기준 따라 큰 편차…러 회사서 고급차 800대도 반입

유엔 대북제재가 규제하는 다른 사치품들도 복잡한 세계 무역망을 거쳐 북한에 공급되는 것으로 추정됐다.

선진국방연구센터는 지난 10년 이상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 및 의류, 애플의 아이폰까지 북한에 계속 유입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연구센터는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 미국 동맹국을 포함해 최대 90개국을 통해 북한으로 사치품이 조달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이전까지의 추정보다 더 많은 것이라고 센터 측은 전했다.

북한으로의 사치품 수출 총액 추정치는 어떤 기준으로 '사치품'을 규정해서 추계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유엔의 수출통제 품목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 2015∼2017년 북한에 사치품을 수출한 나라는 모두 32개국이며, 총 수출액은 1억9천만 달러(약 2천256억원)로 추계됐다. 최대 수출국은 중국(95%)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대북제재 대상이 되는 사치품이 무엇인지를 정의한 13개 국가 또는 국제기구의 수출통제체제 중 단 1곳에라도 포함되는 모든 품목을 망라해 추산한다면 대북 사치품 수출은 같은 기간 90개국에서 51억7천만 달러(약 6조1천억 원)로 증가한다.

사치품의 판매자와 구매자는 주로 '돈주'로 불리는 민간 상인이고, 북한 외교관이 해외에서 배송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러시아 회사를 통해 2016년 2월부터 2017년 11월까지 북한에 모두 803대의 고급차가 반입된 사실도 파악됐다. 차량 수출의 경우도 중국이 가장 많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관련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러시아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이 중 67%에 해당하는 러시아 우아즈 사의 차량(537대)을 제외한 나머지 고급차 수출은 대부분 일본 승용차로 집계됐다.

선진국방연구센터는 보고서에서 803대 중 153대의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적시하고 "일본의 수출통제체제는 사치품의 북한 수송을 금지하고 있다"고 적었다. /뉴욕·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