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징용배상 반발 '수출규제'에 국민적 분노
유니클로 임원 "오래가지 못갈 것" 실언 기폭제
들불처럼 번진 운동, 영화·책 등 문화상품에 불똥
애니 '코난 극장판' 홍보 축소… 일부 '평점 테러'
출판계 눈치보기… 기념판 연기·방한 행사 취소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사회 전반에 퍼지며 사회 이슈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일본산 제품 구매 거부라는 소비자들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됐지만, 택배노조, 마트노조, 편의점 업계 등 공급자들까지 적극 동참하면서 불매운동은 들불처럼 번졌다.
특히 "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며 한국 소비자를 무시한 일본 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임원의 발언은 이번 불매운동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일본의 예상과 달리 불매운동은 많은 국민이 불매 운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장기간 이어가고 있다. 그렇게 일본 불매 운동의 한 달을 맞았다.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해 단 기간에 생활 전반으로 퍼진 일본제품 불매 운동의 과정을 살펴본다.
# 보복성 수출 규제, 일본제품 불매 운동으로 확대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재판에서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1대1 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측에 제공된 5억 달러 규모의 경제협력을 통해 모두 해결됐다며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국제법을 위반했다고 반발했다.
이후 일본은 지난 1일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한다고 발표했고, 일각에서는 '강제징용 갈등에 대한 보복'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한국 수출 규제 강화에 대해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수정한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를 인정한 꼴이 됐다.
이는 전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곧바로 일본산 제품 거부 등 '보이콧 운동'이 시작됐다.
# 자발적으로 시작된 불매운동, 대중문화계까지 번져
의류, 주류 등 상품 위주로 이뤄지던 불매운동은 문화계까지 퍼졌다.
극장가에서는 여름방학을 겨냥해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불매운동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달 11일 개봉한 '극장판 엉덩이 탐정: 화려한 사건 수첩'은 원작이 베스트셀러고, 도서 자체가 학부모와 어린이들에게 반응이 좋아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이 영화는 개봉 첫주 1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지만, 2주차부터는 평점 테러가 이어지면서 2만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24일 개봉한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명탐정 코난' 시리즈는 개봉 때마다 45만명 가량이 찾을 정도로 고정 팬을 지닌 작품이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배급사 측은 홍보 행사를 축소하는 분위기다.
오는 8일 스크린에 걸리는 일본 예술영화 '나는 예수님이 싫다'와 14일 개봉하는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달 탐사기' 등도 보이콧 영향권에 들어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출판계에서는 신간 일본 소설 출간 계획을 미루거나 작가 방한 행사를 취소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오쿠다 히데오의 스테디셀러 '공중그네'는 10주년 기념판 출간이 연기됐고, 일본 문단의 거물 신인으로 꼽히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방한 행사도 취소됐다.
책의 경우는 영화와 달리 불매 운동 대상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논란도 있다. 정신문화에 직결된 것인데 의류, 주류 등 단순 공산품보다 더 강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문화예술 상품을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비문명국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의견 등 여러 가지 주장이 혼재한다.
연예계도 예외는 아니다.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 단골 여행지였던 일본이 모습을 감추는 등 일본 관련 콘텐츠들에 대한 주의보가 내려졌다. 실제로 최근 반일 감정이 확산되자, 안방극장에서 일본 여행은 자취를 감췄다.
일본 여행을 간 연예인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여자친구와 함께 일본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린 그룹 SS501 출신 김규종은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지자 사과문을 올렸고, 배우 이시언은 일본에 살고 있는 지인의 집에 방문한 것을 인증했다가 급히 해명하기도 했다.
반대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동참한다고 밝힌 배우 이시영, 계획했던 일본 여행 취소 인증샷을 올린 개그맨 김재욱과 오정태 등은 누리꾼들의 응원을 받았다.
일본인 연주자 조롱 '인권침해' 의미훼손 우려도
"방향성 잃는다면 또 다른 폭력" 적절수준 필요
#혐오, 인권침해 등으로 이어지는 일부 불매운동, 본래 목적, 의미 훼손해선 안돼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불매운동 중 일부 행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최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비난부터 하는 '인권 침해'가 발생해서다.
지난달 25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공연무대에 일본인 연주자가 나오자 객석에서 일본인을 비하하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일본여행을 떠난 한국인에게 '매국노' 낙인을 찍어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매국노 팔로우 계정도 만들어져 논란이 됐다.
해당 SNS 페이지 운영자가 일본 여행 인증샷과 후기를 올린 계정을 찾아낸 후, 당사자를 조롱하고 망신을 주는 계정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목된 계정에는 당사자를 조롱하는 듯한 댓글들이 이어졌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본인에 대한 차별 또는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행동들은 순수한 국민적 운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번 일본 불매운동은 국민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최근 비방, 혐오, 매도 등 극단적인 행동들이 발생하면서 불매운동의 의미나 목적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처음 순수하게 시작했던 불매운동이 방향성을 잃는다면 불매운동의 일환이 아닌 또 다른 폭력 문제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는 적절한 수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