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서석지' 1613년 석문 정영방이 조성… 상서로운 돌 가득, 3대 민간정원 꼽혀
'문경 주암정' 30년전 만든 인공연못… 배모양 바윗돌위 정자, 연꽃바다 건너는 듯
'봉화 청암정' 기묘사화 당시 파직 권벌, 당파싸움 벗어나고픈 심정 담아 '자연 조화'
'예천 초간정' 금곡천·다양한 나무와 어우러져… 전란때마다 수난 1870년 고쳐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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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나무, 물, 바위 조합에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붓을 든다. 

 

선과 색에 계절감이 실리고 화룡점정 청량감이 화폭에 담긴다. 한여름의 정원에선 들숨이 다르다. 

 

원 안에 머물던 산소가 와락 달려든다. 기습적인 상쾌함이다.

 

여름의 정원을 소나기 못잖은 청량감으로 소개하는 이유다. 

 

사계절 뚜렷한 구분으로 시간관념이 철저하다. 봄에 태어나 기운을 틔워 성장하고, 여름에 무르익어 한창 기세를 뿜어 보인다. 

 

가을이면 화려한 절정에 오르곤 물러갈 때를 비친다. 겨울이면 웅크려 다음 생을 예비한다. 

 

무르익어 한창 때인 여름의 정원이다. 선조의 풍류에 여름 정원은 한 폭 그림이다. 여름 땡볕도 조도를 높여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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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서석지 정원의 각 개체는 제각기 이름이 있어 생명력을 뿜어낸다. 사진/이채근기자

# 영양 서석지


=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의 서석지(瑞石池)는 동래 정씨 집성촌 연당마을에 있다. 

 

1613년 성균관 진사를 지낸 석문 정영방이 조성했다. 조선시대 민가정원으로 담양 소쇄원,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국내 3대 민간정원으로 꼽힌다. 

 

서석지는 가로 13m, 세로 11m, 평균 수심 1.5m로 요(凹) 자형 못이다. 이름처럼 상서로운 돌이 못 안 가득이다. 

 

돌은 보기 드문 광석이거나 보석이 아니다. 상서로움은 정원을 만든 이의 심성에서 왔다. 돌마다 제각기 이름을 붙였다.

전체 공간이 넓진 않다. 그러나 각 공간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400년이 넘은 은행나무 압각수(鴨脚樹)를 비롯해 정원 모든 구성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정자인 경정(敬亭)과 서재인 주일재(主一齋)에서 낮잠이나 책읽기에 빠져 있으면 돌과 나무들이 제가끔 연꽃과 어울려 수런수런 얘기를 나누거나 날벌레들의 안부를 물으며 뭔가 바쁘게 움직일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 정원은 변수와 상수로 가름할 수 있다. 바위는 늘 자리에 있는 상수지만 물, 나무, 꽃은 변수다. 

 

계절에 따라 바뀐다. 변수 없이는 상수 홀로 돋보이지 못하고 변수는 상수가 있은 덕에 자리를 찾는다. 어느 하나가 앞서서 압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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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주암정은 배 한 척이 연꽃 바다를 건너는 모양새다. 정자에 오르면 갑판에서 망망대해를 내다보는 기분이 든다. 사진/이채근기자

# 문경 주암정


= 주암정(舟巖亭)은 문경시 산북면 서중리에 있다. 

 

'서중리 41-2'로 입력하면 쉽다. '웅창마을'이라 불리는 곳이다. 한 번 보면 왜 주암정인지 안다. 정자를 받친 바윗돌이 배 모양이다. 

 

적당히 닮은 걸 꿰어 맞춰 이름 붙였다기보다 날렵한 선두 모양의 바위는 척 봐도 배 모양이다. 여름에는 연꽃과 능소화가 주인이다. 연꽃이 배 모양 바위 주변에 몰려 붙은 모양새다.

1673년 마흔의 나이로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 생원으로 공부했던 주암 채익하를 기려 1944년 세운 정자라고 한다. 1944년이라니 사람으로 치면 매우 어린 나이다. 

 

가까이서 보니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지붕 등 일부는 비교적 매끈해 전통미가 떨어진다.

실은 어느 문중의 고택을 옮겨놓은 것이다. 관리를 맡고 있는 채훈식씨가 솔직하게 답해준다. 어디에 있던 건물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1944년 정자를 조성했을 때 금천이 앞을 지났다고 한다. 그러나 홍수로 물길이 바뀌고, 동로면에 경천댐이 생기면서 물이 줄었다고 한다. 결국 둑을 쌓은 뒤 인공 연못을 팠다. 현재의 모양을 갖춘 때다. 그게 30년 전이다.

'주인이 업서도 차 한 잔 드시고 가세요'라 정자 기둥에 붙여놓은 글귀가 정겹다. 상자 째 놓인 커피믹스가 폭양 아래서도 달짝지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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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닭실마을에 있는 청암정. 사진/이채근기자

# 봉화 청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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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청암정(靑巖亭)은 벼슬에서 물러난 선비가 낙향해 지은 건축물이다. 

 

풍광이 뛰어난 물가에 정자를 지은 게 아니다. 벼슬이나 당파싸움에서 벗어나길 원했던 목적성에 맞게 자연으로 돌아가고픈 심정이 반영됐다.

예조참판을 지낸 충재 권벌이 1519년 기묘사화 때 파직당해 닭실마을에 내려왔고 7년 뒤 만든 게 청암정이다. 

 

자연스레 풍류를 즐기는 용도가 아니었다. 닭실마을 후손들도 성지처럼 여긴다. 그도 그럴 것이 충재는 이후 1533년 복직하지만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귀양을 가게 됐고 유배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를 둘러싼 연못과 왕버들이 그림이다. 검소하고 겸손한 색채다. 비 오는 날 운치가 배가되는데 육감을 자극한다. 

 

빗물을 맞은 청암정의 색깔은 도드라지고 꽃과 나무를 때리던 빗물은 향을 껴안고 못에 떨어진다.

어느 곳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무리한 사진 촬영은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일부 사진작가와 몰지각한 관람객을 성토하는 말을 이곳 관리자들의 말을 듣고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는데 경계로 삼아야할 경구처럼 들렸다. 그대로 옮긴다.

"사진 찍는다고 나무를 전지가위로 자르고, 바위에 있는 이끼에다 락스를 뿌리고, 담도 무너졌어요. 정자 위에 올라가서 자기 이름 새겨놓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청암정은 가까이에 있는 석천계곡과 함께 국가가 인정한 사적 및 명승이다. 조선 중기 실학자 이중환은 일찍이 '택리지'에서 손꼽히는 경승지로 이곳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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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명승 초간정 원림의 모습. 금곡천이 정자 아래 암벽을 휘돌아 나가면서 동양화 한 폭이 완성된다. 사진/이채근기자

# 예천 초간정


= 예천군 용문면 원류리 초간정(草澗亭) 원림은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쉽게 보이지 않는다. 과수원 들판과 지방도로 사이에 숨어 있다. 지방도로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면 펼쳐지는 동양화 한 폭이다.

암벽 위 정자 아래로 금곡천이 휘돌아 나간다. 단풍나무와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가 조화를 이룬다. 여름에도 좋지만 특히 10월 말, 11월 초에 절경에 이른다.

초간정은 1582년 초간 권문해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인물이다. 벼슬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내기 위한 공간이 초간정이었다.

전란을 피한다는 십승지 금당실마을과 가까운 곳이지만 전란 때마다 수난을 겪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중건했지만 1636년 병자호란 중에 다시 불탔다. 현재의 건물은 1870년 안동 권씨 후손들이 새로 고쳐 지은 것이라 한다.

/매일신문=김태진기자, 사진=이채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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