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0년대 할아버지부터 정착 5대째 이어
학생들 사자·용춤 배워 시민과 가까워지길

그런 점에서 짜장면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인천의 화교(華僑)들은 인천의 대표 얼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화교의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합니다.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제물포에 주둔한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40여명의 군역 상인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인천에 정착하면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교육기관이 필수적이었습니다. 1902년 소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인천화교중산소학(이하 인천화교학교)의 모태입니다.
손승종(60) 인천화교학교 교장도 이 학교 출신입니다. 인천화교학교는 유치원, 초등부·중등부·고등부가 있습니다. '중산'은 중화민국을 세운 쑨원(1866~1925)의 아호입니다.
대만의 교육과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대만과는 달리 한국어 수업시간이 있기는 합니다.
손승종 교장의 할아버지가 1930년대 중국 산둥반도에서 한국으로 건너왔다고 합니다. 손 교장의 손자까지 5대째 인천에 살고 있습니다. 1960~70년대에는 학생이 1천200명을 넘었습니다.
지금은 400명도 채 되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화교 배척이 이루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떠났습니다.
화교사회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집에서 중국어만 썼습니다. 그러니 한국말이 서툴 수밖에 없었지요. 영락없는 이방인이었지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중국말이 서툽니다.
손승종 교장은 그게 걱정입니다. 화교학생들이 중국말에 서툰 것은 화교들의 한국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손승종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당부합니다. 집에서는 되도록 중국어를 쓰도록 해달라고요. 그러면서 하나 더 강조하는 게 있습니다. 화교사회와 인천과의 소통입니다.
학생들이 사자춤과 용춤을 제대로 배워, 이를 통해 인천 시민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손승종 교장은 올해 10월 10일 쌍십절 기념일에 펼칠 춤공연이 인천과의 소통의 장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10월이 벌써 기다려집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인천의 얼굴'을 찾습니다. (032)861-3200이메일 : sa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