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고등학교(교장·전창성) 교실에 때 아닌 마을 어른들이 나타났다. 5일 오전 11시 양동고등학교 1학년 2반 교실. 3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의 아저씨들이 영어회화 테이프를 활용한 영어수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어려운 가정형편 등으로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한 마을 주민 12명으로 올해 이 학교 정규모집에 입학했다.
직업은 농업과 소규모 사업체 사장으로 학생수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는 시골 향토학교를 살린다는 취지와 늦게나마 정규 고교 교육과정을 이수하겠다는 만학도의 꿈이 빚어낸 이색교육현장이다.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3명이 결석했지만, 9명의 만학도들은 김계진(44) 영어교사의 기초회화수업에 일반 학생과 다름 없이 진지한 학구열을 보였다.
이 학교의 올해 신입생은 35명. 실업계 9명을 제외하면 보통과 2개반을 운영할 수 있는 최소인원 38명에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다. 매년 보통과 2개반과 경영정보과 1개반을 운영해 온 이 학교는 보통과 신입생 26명으로는 학생수 12명이 부족, 학급과 교사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였다.
전창성 교장은 “방과후 고된 일상으로 돌아가는 만학도이지만 수업시간만큼은 감동적일 정도로 적극적”이라며 “어려운 여건속에서 배움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인도하는 것은 고인이 된 설립자의 근본 취지였다”고 말했다.
일반 학생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다. 만학도중 4명은 이미 이 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있어 자녀들은 독특한 선배, 후배의 역할을 마다 않는다. 숙제와 학용품을 챙겨주는 것은 기본이고 학생간의 소란은 있을 수 없다. 일반 학생에게는 만학도의 일상이 삶의 모범이자 잔잔한 감동으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만학도 남기수(53·농업)씨는 “바쁘지만 예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이라고 했고, 이상엽(50·양동면 이장협회회장)씨는 “컴퓨터로 문서도 작성할 수 있게 돼 마을 일을 보는데 문제없다”며 자신의 선택을 자랑스러워 했다.
양만모(47·농업)씨는 “1년 선배격인 아들이 요즘 공부에 재미를 붙이는 등 분위기가 적극적으로 바뀌어 보람을 느낀다”며 좋아했고 왕경식(38·농업)씨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 학급의 반장 박종열(58·사업)씨는 “2남1녀 모두 대학에 보냈지만 정작 자신은 보릿고개시절 쌀 6말과 보리쌀 4말에 해당되는 고교 수업료가 없어 배움을 포기해야 했다”며 “무언가를 알아 간다는 것이 이렇게 큰 기쁨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양평
향토 시골학교 살리려 아저씨들 늦깎이 공부 배우는 기쁨도 쏠쏠하네
입력 200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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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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