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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한국YMCA 지하강당에서 '한국이 적인가-긴급집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집회에는 220석 규모의 강당을 다 채우고 남는 350여명이 참석했다. /도쿄=연합뉴스

31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 구 한국YMCA에서 열린 '한국이 적인가-긴급집회'에 350여명의 일본인이 참석했다.

이날 집회는 지난달 말부터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한 일본인들이 오프라인에서 아베 신조 정권의 '한국 때리기'에 대해 성토하는 자리였다.

집회에는 220석 규모의 행사장이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이 몰려 강당 앞 복도까지 가득 채웠다. 일부는 복도에 서 있을 공간마저 없어서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서명운동을 주도한 인사 중 한 명인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는 집회에서 "아베 총리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반대하며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고 결단한 뒤 일본 정부가 한국을 상대로 수출 규제 조치를 강행했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이후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미일 동맹의 강화와 중일 관계의 안정적 유지'라고 주장하는 주간지 보도가 이어졌다"며 "아베 총리의 '한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정책'이 향해가는 곳은 평화 국가 일본의 종말"이라고 비판했다.

이타가키 유조 도쿄대 명예교수는 "2차대전의 가해국 중 뒤처리가 전혀 안 된 나라는 일본뿐"이라며 "이는 일본이 침략 전쟁, 식민지 지배 등 무엇 하나 확실히 반성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취한 조치는 한국을 차별하면서 과거를 반성하지 않아 온 자세가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정부뿐 아니라 일본 시민 모두 (과거의 잘못을) 마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는 "일본 정부가 그동안 일관되게 개인에 의한 보상청구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며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아베 정권의 주장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일본 정부는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뒤에도 사할린 잔류 한국인의 귀국과 피폭 한국인을 지원하는 등 협정을 수정·보완하는 행위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의 주최 측은 '한국은 적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진행해 온 서명 운동의 참가자가 30일까지 9천300여명이라고 밝혔다.

와다 명예교수, 우치다 변호사 등 일본의 학자, 변호사, 언론인, 의사, 전직 외교관, 시민단체 활동가 등 78명은 지난달 25일 인터넷 사이트(https://peace3appeal.jimdo.com)를 개설해 서명 운동을 진행해왔다.

이들은 성명에서 "일본 정부가 마치 한국이 '적'인 것처럼 다루는 조치를 하고 있지만, 이는 말도 안 되는 잘못"이라며 "아베 총리는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의 사이를 갈라놓고 양국 국민을 대립시키려는 것을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 운동 소식은 일본 언론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지만, 입소문을 통해 확산하면서 이날 낮까지 26만961명이 방문했고 4천48개의 응원 글이 작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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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한국YMCA에서 열린 '한국이 적인가-긴급집회'에서 후쿠다 게이스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낮 민영방송 CBS의 나고야 본사와 도쿄지사 앞에서는 혐한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낸 프로그램의 폐지를 촉구하는 항의 집회도 열렸다.

지난 27일 방송된 CBS의 와이드쇼(방담 형식의 정보 프로그램) '고고스마'에 출연한 다케다 구니히코 일본 주부대 특임교수는 한국에 여행 온 일본인 여성이 한국인 남성에게 폭행당한 사건을 거론하며 "일본 남자도 한국 여성이 들어오면 폭행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차별·혐오발언 반대 시민단체 '크랙(C.R.A.C.)'은 이 방송사 대표를 향해 발표한 항의문에서 "'고고스마'의 출연자가 민족차별과 성폭력을 선동했다"며 "하지만 사람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방송을 한 것에 대해 제작진이 어떤 책임을 질지 밝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집회에서 참가자들은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를 용서하지 않는다", "'고고스마' 폐지하라"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방송사에 항의했다. 

/이상은기자 ls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