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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지난달 30일 수원 산상교회에서 열린 유신고등학교 수향제 축제 현장. 마지막 무대를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퇴임한 허진 교사(영어)와 유신고 록밴드동아리 천지창조가 장식했다.

졸업생들과 함께 미국 록가수 Bon Jovi의 곡을 연주한 그는 홀로 무대 위에 서서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교직 내내 담임 교사를 맡았던 그는 사회를 보던 학생의 울먹임에 왈칵 눈물을 쏟으며 무대 뒤를 바라보고 한참을 서 있었다. 내일이면 자식 같은 학생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서글픔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다고 한다.

1983년 12월 용인 문정중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허 교사는 3년 뒤인 1986년 3월 유신고로 옮겼다.

허 교사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만 1만여명이다. 그는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친 제자가 교통사고로 숨졌을 때 가장 슬펐고, 우리 반에 있던 최정이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로 성장하는 모습을 멀리서 볼 때 좋았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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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록밴드동아리 천지창조와의 인연은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도교사가 없으면 수향제 동아리 지원비를 받지 못한다는 이정선군의 요구에 담당 교사로 이름을 올린 게 27년간 한 동아리를 맡게 된 계기였다.

밴드부원들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동고동락한 그는 10년 전부턴 전기기타를 배워 매 정기공연 때마다 1~2곡씩 함께 연주했다. 허 교사는 학생들과 성경공부 모임 '바이블타임'을 만들어 4~5년 전부터 꾸준히 이어왔다.

허 교사는 "학생들과 같이 연주하는 것이 일단 즐거웠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울림과 감동을 주지 않을까 싶어서 배웠다"며 "삶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은 시기 학생들이 성경 속에서 위로를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2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컸던 허 교사는 대학 졸업 후 은행원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으나 이익 지향적인 업무 탓에 1년을 견디지 못하고 퇴직했다.

할머니가 바라던 직업인 교사로 가정환경이 어려운 학생들을 돌봐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편을 잡고 세월이 쌓여 20대 젊은 영어 교사가 환갑이 다 됐다.

허 교사는 "퇴직하며 가장 아쉬운 것은 자·타의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을 이제 더는 못한다는 것"이라며 "유신고가 앞으로도 기독교 이념을 실현하고 평등사회를 지향하는 인재들을 키워내는 명문 사학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