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여인이 대사를 읊으며 무대에 등장한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내레이션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관객들은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그 의미를 이해한다.
여인을 둘러싼 다른 여자들이 일렬로 서서 줄곧 따라다니며, 동작을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주인공의 심리를 몸으로 묘사하듯이.
연극인지 무용인지 구분이 안가는 이 작품은 경기도립무용단의 단원 김혜연이 만든 '상태가 형태'다.
지난 달 30~3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2019 단원창작 프로젝트-턴어라운드'에서 김용범·이주애 단원도 각각 안무작을 선보였다.
춤언어의 경계를 파괴한 신선한 도전들이었다. '턴어라운드'는 단원에게 안무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 외에도, 한국전통춤을 춤언어로 사용하는 무용단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몇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무용단원의 본업은 춤을 잘 추는데 있는데, 왜 안무를 했을까. 피아니스트에게 작곡을 맡긴 격이니 무리한 기획은 아니었을까.
답은 한마디로, 아니다. 춤을 만들어본 무용수는 표현에 있어서 그 깊이를 더 한다. 한편 안무가가 직접 춤을 출 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단원에게는 꼭 필요한 기회고, 무용단으로서는 꼭 수행해야하는 과제이다.
훌륭한 무용수는 넘쳐나는데, 정작 연출과 제작을 모두 아울러 고민할 줄 아는 안무가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안무가 양성을 위한 필수 프로젝트다.
비록 초연에서 완성작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미래의 레퍼토리를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적인 안무가의 대부분은 무용수 출신이다.
단원들에게 주어진 작은 일탈이 훗날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멋지게 돌아올 것이다.
/장인주 무용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