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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균 양평군수가 국회 의원회관 3층에서 열린 시화전 개막식에서 축하 인사말을 하고 있다. /양평 산음보건진료소 제공

"태어나서 처음 국회에 와봤는데 이렇게 좋은 곳에서 내가 지은 시(詩)를 선보인다니 두렵고 떨리면서 눈물이 나네요"

지작 시를 낭송한 채나스자(77)어르신이 감격에 겨운 듯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글썽였다. 양평군 단월면 산음·석산리 어르신들의 시화전 '인생에 말을 걸다'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3층 제3전시실은 감격과 흥분 설레임으로 가득 채워졌다.

지난 7월 15일 어르신들이 지은 시를 묶은 시집 출간 기념회에 참석했던 정동균 양평군수가 '국회에서 시화전을 열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던 약속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로 이뤄져 산골 어르신들은 마냥 신기하고 즐거워면서도 마음 한켠에서는 겁이 나기도 했다.

'국회에 가는 날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설레임에 마음이 두근거려 밤새 한숨도 못잤다'는 어르신 70여명은 지난 9일 오전 관광버스 2대에 나눠타고 웃음꽃·얘기꽃을 피우며 전시회가 열리는 여의도에 입성했다. 이날 고무신에 꽃 그림을 그려 단체로 신고 국회를 찾은 오지마을 어르신들의 주름진 얼굴에는 연신 함박 웃음꽃이 피어났고 자신의 시화 앞에 서서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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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시화전을 위해 국회를 방문한 산음·석산리 어르신들이 두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밝은 표정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양평군 산음보건진료소 제공

이날 전시회는 김영 단월면 산음보건진료소 소장이 지난 2016년부터 3년 동안 우울과 치매예방사업으로 시작한 '나만의 시(詩)짓기 교실'을 통해 창작된 어르신들의 시 70여편에 그림을 그려 전시했다.

어르신들의 시는 '어린 시절의 행복·애달픈 기억들, 부모에 대한 그리움,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아픔, 가족에 대한 사랑, 이루고 싶었던 꿈' 등 다양한 주제로 어르신들의 삶을 투박하지만 진심이 시리도록 묻어나는 언어에 담겨져 있으며, 양평읍에 소재한 올리브 미술학원생들이 재능기부로 정성껏 그림을 그려 의미 있고 멋진 시화작품으로 탄생했다.

엄마와 너무 어린나이에 헤어져 엄마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한맺힌 삶, 싸리문 앞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애티는 마음, 치매 걸린 어머니가 나를 못알아 볼 때의 무너지는 가슴, 자식의 불행 앞에 매니큐어로 위로를 받는 할머니….

가슴속에 맺힌,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응어리를 풀어헤쳐 그동안 잘 살아온 나의 인생에 말을 걸고, 나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가족 이웃에게 말을 걸고 다음 세대를 이어갈 젊은 사람들에게 수없는 말을 걸고 싶은 어르신들의 속내가 잔잔한 고스란히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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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국회에서 열린 시화전에 참석한 정동균 양평군수, 정병국 국회의원, 원은숙 군 보건소장, 김영 산음보건진료소장이 시 낭송을 한 어르신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양평군 산음보건진료소장 제공

시 낭송을 하라는 부탁을 받고 거의 보름 동안이나 밤잠을 설치며 '임자, 아직도 나는 당신을 사랑하오'라는 시를 외웠다"는 어르신의 시낭송 소감, " 희미한 엄마 얼굴과 여자의 꿈인 하얀 면사포를 쓰고 싶은 간절함을 담은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꿈' 시 낭송 등….

인생의 뒤안길로 먼지처럼 사라질 법한 산골 어르신들의 인생 이야기들이 시어에 얹혀 들려오는 동안 참석자들도 공감한 듯 숨죽이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이날 시화전에는 정동균 군수, 정병국·김무성 국회의원, 최영식 양평문화원원장, 이종인 도의원, 원은숙 군보건소장, 엄정섭 단월면장, 김연호 운영위원장 등이 참석, 아낌없는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김영 산음진료보건소장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준 정동균 군수, 국회에 초청해준 정병국 의원 등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시화전을 열 수 있게 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꿈 같은 일이 이뤄져 너무 감격스러워 피곤한 것도 모르고 준비를 해왔다"고 흥분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소장은 이어 "이번 시화전을 통해 시 라는 넘기 힘든 문턱은 어르신들을 비롯 누구나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며 "산골마을 산음·석산리가 '시인이 사는 마을'로 양평군의 오지가 아닌 시인의 마을로 재탄생되길 기대한다"고 소박한 꿈을 꺼내 보였다.

양평/오경택기자 0719o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