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불화수소 등 소재산업 높은 日의존
수출규제에 대기업 비상경영 돌입
"제2의 독립운동을" 국산화 불붙여
정부도 기술확보 등 지원사격 나서

한·일 간 전면적인 '경제전쟁'이 현실화되면서 전국적으로 '보이콧 재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민사회 등 각계각층은 일본의 경제보복을 '제2의 주권침략'인 '기해왜란(己亥倭亂)'으로 규정하고 일본에 맞서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일부 시민은 '신 독립군'을 자처하며 '제2의 독립운동'을 선언하는 등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시민들의 분노는 일본 정부가 지난 8월 초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며 격화됐다. 일본 여행 자제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처럼 경제·사회분야에 한정되던 반일운동은 이제 스포츠·대중문화 등 사회 전 분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은 서울 광화문광장과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잇따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규탄하는 촛불 문화제를 열거나 일본 국적 연예인들의 퇴출운동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항일운동', '죽창' 등의 한 세기 이전에 거론된 역사 속 단어들이 SNS에 난무하고 '토착왜구', '신친일파' 등의 신조어들도 시민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 기해왜란 발발(勃發)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반도체 제조 공정에 쓰이는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를 비롯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액정표시장치(LCD) 등 디스플레이에 쓰이는 불화폴리이미드를 한국 수출과 제조 기술 이전에 대한 포괄적 수출 허가제도 대상에서 제외했다.

허가 신청 면제 등의 우대 조치를 해제한다는 것으로 일본 정부의 신청 및 승인 시 최대 90일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우리 기업들의 수출 타격이 불가피한 것인데 불화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 불화수소는 약 70%를 일본이 점하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또 지난 8월부터 한국을 외국무역법상의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했다. 대상에서 제외되면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자 우리 정부는 곧바로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에 대응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포함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기 시작했고,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보이콧 재팬'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각종 인터넷 및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에선 일본의 경제전쟁을 임진년(壬辰年)에 침입한 일본과의 싸움인 임진왜란에 빚대어 표현한 기해년(己亥年)에 벌어졌다 하여 기해왜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제2의 독립운동 선언


기해왜란이 발발한 이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기업들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각 업체는 소재 재고 확보에 주력하는 한편 일본의 의존도가 높은 제품에 대한 국산화에 나섰고, 당·정·청은 대응책 마련에 머리를 맞댔다.

청와대와 정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화이트국가 제외 이후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자고 뜻을 모았다.

특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것과 연계해 "제2의 독립운동 정신으로 한·일 경제대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 경기도당은 일본의 도발을 놓고 '비겁한 무역보복'이라며 '제2의 독립운동'을 한다는 각오를 내비치기도 했다.

시민들의 동참도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은 기해왜란에 반발해 출시된 일본 제품 목록과 대체 국산품을 알려주는 '노노재팬' 앱을 다운 받아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 나섰다.

아울러 도내 시민단체는 일본 경제보복을 겨냥한 강연을 잇따라 열거나 도내 곳곳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규탄하는 촛불 집회를 개최하는 등 일본의 경제 식민지화 계략에 반발하고 있다.

■ 탈(脫) 일본화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우리나라는 소재 국산화의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반도체·디스플레이 시장을 주도하지만 핵심 소재는 해외, 특히 일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핵심 소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를 더욱 크게 냈다.

정부 역시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우리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적극 지원한다. 이를 위한 정책금융기관 중심 'M&A 인수금융 협의체'가 지난 8월 말 공식 출범·가동됐다.

금융위원회를 비롯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이 포함된 협의체는 전략물자 등 국내 밸류체인 핵심품목 중 기술 확보가 어려운 분야는 M&A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는 이들 국책 은행을 중심으로 2조5천억원 이상 인수자금 지원, 자문·컨설팅, 사후통합관리(PMI) 등을 종합 지원한다.

국회도 현재 2천732억원 규모의 일본 수출규제 지원 관련 추경예산을 통과시켰고 1조8천억원 상당의 목적 예비비를 편성해 놓은 상태다.

국산화도 연이어 성공하면서 일본의 경제보복을 무력화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조만간 기존에 사용하던 일본산 불화수소를 100% 국산화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달 초부터 대만산 불화수소를 수입해 가공한 제품을 일부 양산 라인에 시험 적용하고 있다.

/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