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속 주인공은 늘 서울사람… 동네소식 알 수 없어
시민 삶 밀접한 정책도 이슈 안돼… 개선 목소리 커져
"지역사회는 포털의 식민지다."
지난 4월 지역신문노조협의회 워크숍에서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대표적인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지역언론의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어서 시민들은 이를 알아채지도 못한다. 시민들은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출근길에 퇴근길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나 서울 소식이 가득 찬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명절 연휴 밥상머리에 오르는 시사 주제나 식사 자리에서 오가는 이야기도 모두 서울의 얘기뿐이다.
서울 인구는 한국 인구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포털 속 기사에는 도리어 지역의 소식이 5분의 1이 안 된다. 인구 1천300만, 전국 최대 지자체인 경기도나 인구 300만의 인천 사정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경기도에서 인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어떤 일이 중요하게 추진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포털 속 지역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사건 사고의 '무대'에 지나지 않는다.
수도권은 물론이고 지역 시민들이 접하는 언론 기사 속 주인공은 늘 서울 사람이다. 시민들은 자기 동네 소식을 알 수 없다. 인터넷으로 세상은 연결되고, 인터넷 세상으로 열린 한 줄기 통로(포털)에는 지역 기사가 없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사이, 지역언론은 검증받지 않았고 검증되지도 않는 유사언론의 진출 무대가 됐다.
언론 기사가 시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니 지역 위정자들은 지역언론의 견제에서 자유롭다. 가장 큰 문제는 시민들의 삶과 밀접한 정책들이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지역언론은 물론이고, 정치권·시민사회 등 사회 이곳저곳에서 "지역언론을 포털에 진출시키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 지역신문의 현주소
=지역언론, 그 중 지역신문의 위기는 중앙집권적 사회구조와 지역 매체의 난립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2009년 115개였던 지역종합일간신문은 2017년 122개사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452개였던 지역종합주간신문은 530개사로 동반 증가했다.
2017년을 기준으로 할 때, 사업체 수 비율로 전체 산업의 0.3%를 차지하는 전국종합일간신문 11개사가 전체 산업 매출의 36.4%를 차지했다. 산업 자체가 중앙 집권화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전체 신문 산업 종사자의 59.1%가 서울에 집중돼 있어 언론 산업 자체의 서울 쏠림 현상이 심각했다. 이런 상황 속에 언론 소비 패턴의 변화도 지역신문의 위기를 심화시켰다.
2011년 19%에 불과했던 인터넷을 통한 뉴스 이용률은 지난해 80.8%로 4배 이상 늘어난 반면, 종이신문은 2011년 44.6%에서 2018년 17.7%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천현진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전문위원은 지역성을 우선으로 두는 지역신문의 뉴스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지만, 포털이 도입하고 있는 뉴스 배열 알고리즘이 지역언론을 배제하고 있어 '백약이 무효'하다고 진단했다.
천 위원은 "이러한 알고리즘 아래서는 지역신문이 '1보'를 써도, 서울에 기반을 둔 포털과 콘텐츠 제휴를 맺은 매체가 뒤따라 쓴 기사가 뉴스 검색 결과를 채운다. 로컬 저널리즘의 복원,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서도 지역에서 저널리즘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지역 언론이 생산한 가치 있고 신뢰할 만한 기사가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 노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고 지적했다.
■ 포털에 쏟아지는 비판
=지난 5월 23일 오전, 성남 분당의 네이버 본사 앞에 피켓과 깃발을 든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곧바로 네이버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지역언론 차별을 당장 중지하고 뉴스 배열 정책을 시정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언론 종사자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포털의 지역언론 차별'에 반발해 네이버 본사 앞에서 벌인 첫 집회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은 이날부터 지난달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네이버 본사 앞에서 집회를 이어갔다.
지난달 말부터는 집회 장소를 국회로 옮겨 정치권이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고, 다음날에는 국회 정문 앞에서 집회를 열어 네이버의 지역언론 차별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다뤄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전국 각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신문들의 단체인 한국지방신문협회는 지난 3월 7일 전주에서 개최된 정기총회에서 '포털의 지역언론 죽이기 중단하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역 언론사들이 특정 기업들을 향해 성명을 발표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정부와 정치권이 지역 언론의 위기를 외면하는 사이, 그나마 어렵게 버텨가던 지역 언론의 기반마저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역신문들은 특히 네이버가 뉴스 편집에서 지역 뉴스를 배제한 것과 검색 알고리즘을 변화시켜 지역 뉴스가 뒷전으로 밀려난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사와 언론종사자들 뿐 아니라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 등도 토론회와 성명 발표 등을 통해 포털 기업의 지역언론 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하고 나섰다.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네이버의 지역언론 차별 현실과 대응' 토론회와 5월 9일 한국신문협회 주최로 대전에서 열린 '지방신문 경영혁신 전략토론회'에서는 포털의 지역언론 차별 문제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흔드는 심각한 사회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전국의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5월 15일 공동성명을 통해 네이버측에 '지역 홀대 중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6월 18일에는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제주에서 총회를 열고 네이버의 지역언론 배제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공식 채택했고, 7월 16일에는 전국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가 성남에서 개최한 대표회의에서 네이버의 지역언론 배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신문매출 36.4%·종사자 59.1% 중앙집권화
네이버 모바일 '구독' 지역언론 철저히 배제
발굴 보도해도 '받아쓰기 기사' 검색 상위로
지역민 알권리 위협·언론 다양성 훼손 '우려'
■ 포털 비판의 배경
=포털 기업들의 지역언론 차별 문제는 오랫동안 묵은 고질적 문제였다.
포털 기업들은 지난 10여 년 간 포털 메인페이지와 뉴스페이지를 편집하면서 지역 언론이 생산하는 '지역 뉴스'를 완전히 소외시켜 왔다. 포털 기업들은 언론사들과 '콘텐츠 제휴'를 맺을 때도 지역언론을 배제했다.
네이버는 지난 2004년부터 각 언론사들과 콘텐츠 제휴를 맺으면서 부산일보·매일신문(대구·경북)·강원일보 등 3곳의 지역신문만 제휴에 참여시켰다.
이후 포털을 통한 뉴스 유통이 확대되면서 많은 지역 언론사들이 콘텐츠 제휴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네이버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나마 제휴를 맺은 부산일보·매일신문·강원일보의 뉴스 역시 네이버 뉴스 편집에서는 완전히 소외됐다. 결국 지난 10여 년 간 지역 언론의 뉴스는 네이버 뉴스 편집에서 철저하게 배척됐고, 지역 언론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이런 상황을 눈여겨 지켜본 정치권은 지난해 포털 기업들의 지역 뉴스 활성화를 강제할 법안들을 속속 내놓기 시작했다.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이용자의 위치정보를 바탕으로 지역 언론의 기사를 포털에 일정 비율 이상 게재하는 신문법(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역신문·지역방송 기사를 포털 첫 화면에 게재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신문법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법안들은 국회가 정쟁에 얽혀 공전을 거듭하면서 뒷전으로 밀려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오랫동안 쌓여온 지역 언론사들의 불만은 결국 올해 초 네이버의 편집정책 변화를 계기로 폭발하고 말았다.
앞서 '드루킹 사건' 등으로 인해 정치권으로부터 강한 질타를 받아온 네이버는 탈출구를 찾기 위해 모바일을 중심으로 편집 정책을 대대적으로 개선했는데, 지역 언론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편파성 뉴스 편집'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바일 뉴스 편집을 독자들의 '구독' 언론사로 배열하는 새로운 편집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위해 네이버 모바일에서 '구독' 할 수 있는 언론사 44곳을 선정했는데, 지역 언론이 단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결국 네이버 모바일 편집에서 지역 언론사들은 또다시 완벽하게 배제된 것이다.
네이버는 아울러 '에어스(AiRS)'라고 불리는 검색 알고리즘(콘텐츠 추천 기술)도 대폭 손질해 뉴스 검색 결과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는데, 여기서도 지역 언론들이 큰 타격을 입고 말았다.
알고리즘 변화 이후 '콘텐츠 제휴'를 맺고 있는 언론사들의 기사가 검색 상위에 노출되고, 지역 언론사들의 뉴스는 뒷전으로 밀려나 기사를 찾아보기도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따라 주요 지역 신문사들의 뉴스 페이지뷰가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60%까지 감소했다.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 변화 만으로 지역 신문사들이 온라인 뉴스 유통에서 구독자의 절반이 날아가는 '치명타'를 맞은 것이다.
이처럼 위기에 몰린 지역 언론사들은 네이버에 '지역 뉴스 노출' '검색 알고리즘 개선' '콘텐츠 제휴 확대' 등을 강력하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본 시민사회단체와 언론학계, 정치권, 지방자치단체 및 지방의회 등도 "지역언론의 위기는 민주주의의 위기"라며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기업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 지역언론에 대한 차별을 멈춰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네이버는 지역 홀대를 멈춰라'는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명서의 한 대목을 온전히 싣는다.
"지난 4월 네이버가 검색 알고리즘을 바꾸면서 모바일 콘텐츠 제휴 언론사 중 지역언론을 모두 지웠다. 제휴 언론사 44곳 중 지역언론은 단 한 곳도 없다. 대부분의 뉴스 소비가 포털 검색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네이버의 이번 결정은 언론의 다양성과 지역민의 알 권리를 위협하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할 여지가 크다. 네이버의 지역언론 배제는 기사 검색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광안대교 러시아 화물선 충돌이나 제주도 예멘 난민 문제, 환경부 항공기 소음 측정 문제 등 지역신문이 가장 먼저 발굴 보도해도, 네이버 검색 결과는 지역기사를 보고 뒤따라 쓴 전국지의 기사로 채워졌다. 네이버의 자동기사 추천시스템에도 지역언론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이버의 검색 알고리즘이 사회적 책임보다는 효율과 수익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구나 네이버 뉴스 배열에서 정치적 중립, 공익적 가치 실현을 위해 어떤 원칙을 적용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드러난 결과가 다양성 훼손과 디지털 공론장에서 지역 소외다. 이런 구조에서는 지역 언론의 저널리즘 기능은 더 약화될 수밖에 없고 그 부작용은 지역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박상일·신지영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