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정치인 '일본 옹호' 여론 뭇매
'반일 프레임 눈치' 공연·출판 취소
스포츠용품 '실력 직결' 교체 고민
친선시합 거르거나 전훈 백지화도
■ 때 아닌 신(新) 친일파 논란
여야는 지난 7월 22일 일본이 수출규제 방침을 발표한 이후 대응 방안을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민주당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 배제 등 경제보복 조치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추가경정예산(추경)안 처리가 불발된 책임을 물으며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맹비난했고, 한국당은 민주당이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국민 편가르기로 내부 분열에만 힘을 쏟는다고 성토하며 '친일·반일 프레임'을 들고 나온 여권에 도리어 '신 친일파' 아니냐고 맞받아쳤다.
이후 '신 친일파'란 신조어가 생겼는데 일본 아베 정부를 두둔하고 나선 일부 엄마부대 등이 대표적인 '신 친일파' 또는 국내 친일 매국세력을 표현하는 '토착왜구'로 거론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들은 일본 자본이 투입된 국내 기업들에 대한 정당 활동에 나섰다가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 등과 합성한 영상이 각종 SNS와 '유튜브'에 올라오는 등 곤욕을 치렀다.
■ 연예계는 단속(團束)
국내 여론이 격화되면서 기해왜란 움직임은 각계각층으로 번지고 있다.
심지어 일본 관련 콘텐츠를 소재로 방송하는 '유튜버'나 일본의 대표 견종인 시바견을 키우는 사람들은 친 일본 성향으로 낙인이 찍히고 있다. 그리고 이 불씨는 연예계 등 대중문화계로까지 옮겨 붙고 있다.
연예계에선 이미 SNS 경계령이 내려진 상태다. SNS에 일본 관련 글을 올릴 경우 누리꾼의 뭇매를 맞고 있기 때문인데 이 파장은 일본 관련 제품의 광고모델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요계도 일본 불매운동의 영향권 안에 들어갔다. 중국의 한류 금지령으로 활동 반경을 일본으로 옮긴 한국 가수들은 누리꾼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 공연계는 비상(非常)
공연계도 몸 사리기에 나섰다. 추가 공연 논의가 무산되거나 일부 공연을 자체 취소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데 일본 내 반한(反韓) 기류로 인한 피해보다는 국내 반일 감정이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 한국 인형극단 '예술무대산'과 일본 그림자극단 '가카시좌'가 5년간 워크숍을 거쳐 만든 어린이 대상의 그림자 인형극인 '루루섬의 비밀'은 최근 연말 공연계획이 모두 무산됐다.
또 일제강점기 연극 통제 정책에 따라 시행된 '국민연극제' 참가작으로 친일적 요소가 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던 연극 '빙화'도 전격 취소됐다. 국립극단은 9월부터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다.
국립극단 관계자는 "연구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친일 연극의 실체를 드러내 부끄러운 역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면서 "하지만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한 국민들의 심려에 공감해 작품을 무대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려 취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출판계는 이상(異常)
출판계에선 일본 서적 출간을 미루거나 작가 방한 행사를 취소하는 반면 일본 관련 역사서적의 매출은 급증하고 있다.
일본 소설 스테디셀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의 7월 판매량은 6월 대비 22% 감소했고, 6월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케이도 준의 '한자와 나오키'(인플루엔셜)의 판매량은 39% 줄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삭제한 이후 일본 소설 및 행사가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과 관련된 역사·사회서는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쓴 '반일 종족주의'(미래사)는 지난 8월 둘째 주 인터넷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데 이어 9월 둘째 주(9위)까지 매주 상위권을 놓치지 않고 있다.
■ 스포츠계는 눈치
일본 불매운동으로 시작된 기해왜란에 스포츠계는 눈치를 살피고 있다. 프로축구 일부 구단에선 일본 맥주회사와 맺은 스폰서 계약을 국산 맥주로 대체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프로종목은 계약기간 문제 등으로 인해 일본산 제품을 단칼에 잘라내지 못한 채 추이를 살피고 있다.
국내프로야구의 경우 국내 동아제약과 일본 오츠카 제약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는 동아오츠카가 서브 스폰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동아오츠카와 20년째 수년 단위로 계약갱신 중이라 계약을 파기하기 어렵다.
일본 스포츠브랜드 데상트의 유니폼을 착용 중인 LG 구단도 비슷한 상황이다. LG구단은 데상트와 계약기간이 2년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구단 역시 신발뿐 아니라 글러브, 미트, 방망이, 각종 보호장구 등을 일본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력과 직결되는 만큼 쉽게 바꿀 수 없다.
프로농구도 일본 몰텐이 제작한 공인구를 사용하고 있다. 신발도 아식스와 미즈노 제품을 많이 신는다. 이 역시 경기력 유지를 위해 시즌 중 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로 인해 경기도체육계는 수년간 이어온 교류 활동을 비롯해 프로배구단과 종목단체들의 전지훈련 일정을 모두 취소되거나 무기한 보류했다.
도내 한 지자체는 일본 시마네현에서 진행하려던 '39회 한·일 우호도시 친선교환경기'를 취소했다. 도내 A육상팀도 오는 11월 일본 오키나와 현에서 진행하려던 전지훈련을 전면 백지화하는 등 기해왜란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시민들은 1년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을 '보이콧'하자는 주장도 제기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보이콧을 할 경우 우리 선수단 피해와 함께 2032년 남북 공동 올림픽 유치에도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히며 '실효성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종찬기자 chan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