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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브렉시트(Brexit)에 반대하며 유럽연합(EU) 잔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며 행진을 벌이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당초 지난 3월 29일 예정됐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Brexit)가 또 한차례 연기되면서 해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오는 31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브렉시트를 단행하겠다던 보리스 존슨 총리의 약속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 브렉시트 법안 '스톱'…추가 연기 여부 EU에 달려

영국 하원은 22일(현지시간)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합의를 토대로 한 EU 탈퇴협정 법안을 사흘 내 신속처리하는 내용의 '계획안'(programme motion)을 부결했다.

앞서 영국과 EU는 EU 정상회의 직전인 지난 17일 오전 브렉시트 재협상 합의에 도달했다.

기존 '안전장치'(backstop)의 대안을 놓고 평행선을 달리던 양측은 결국 북아일랜드를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시장 체계에 남겨두는 방안에 합의했다.

새 브렉시트 합의안은 그러나 이번에도 영국 하원의 벽에 가로막혔다.

영국 범야권과 하원의장이 합의안 승인투표(meaningful vote)를 가로막자 존슨 총리는 아예 승인투표를 거치지 않고 바로 EU 탈퇴협정 법안을 상정했다.

영국 정부는 전날 EU 탈퇴협정 법안 및 설명서를 공개하면서 제1독회 단계를 마쳤다. 법안의 목적과 전반적 원칙에 대한 토론을 진행한 뒤 표결을 통해 다음 단계로 이송 또는 법안 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제2독회 역시 찬성 329표, 반대 299표로 통과했다.

존슨 총리가 지난 7월 말 취임 후 하원 주요 표결에서 처음으로 승리하면서 브렉시트 전망도 밝아지는 듯했다.

그러나 하원은 곧바로 이어진 표결에서 '계획안'을 부결시켰다.

앞서 제이컵 리스-모그 하원 원내대표는 전날 '계획안'을 내놓으면서 "이에 반대한다면 31일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범야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오는 24일까지 EU 탈퇴협정 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킨 뒤 상원과 '여왕재가'를 거쳐 오는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한다는 존슨 총리의 계획은 사실상 좌절됐다. 이에 존슨 총리는 법안 상정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이제 브렉시트 추가 연기에 대해 EU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은 EU 지도자들과 논의를 해나가겠다고도 밝혔다.

앞서 존슨 총리는 지난 19일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관련 이행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브렉시트 합의안 승인을 보류하기로 하는 '레트윈 수정안'을 통과시키자 EU에 브렉시트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유럽연합(탈퇴)법, 이른바 '벤 액트'를 준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벤 액트'는 지난 19일까지 정부가 EU와의 브렉시트 합의안이나 '노 딜' 브렉시트에 대한 의회 승인을 얻지 못하면 존슨 총리가 EU에 브렉시트를 2020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추가 연기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도록 규정했다.

영국의 브렉시트 법안 통과가 좌절되면서 오는 31일 23시(그리니치표준시·GMT)를 기해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 딜' 브렉시트가 '법률적 디폴트'(legal default)가 됐다.

다만 영국이 이미 공식적으로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요청한데다, EU 내에서도 '노 딜' 브렉시트에 따른 파국은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는 만큼 추가 연기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영국은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연기를 요청했지만, EU가 이를 따를 의무는 없기 때문에 단기 연장도 가능하다. 이는 영국 의회가 새 합의안을 비준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방안으로 여겨진다.

영국의 요청대로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31일까지 3개월 연장하는 방안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이외에 EU가 브렉시트 시한을 3개월 이상 장기 연장해 브렉시트 전환 기간이 끝나는 2020년 12월 31일 즈음까지로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당초 지난 3월 29일 단행될 예정이었던 브렉시트는 두 차례 연기를 통해 10월 31일로 시한이 정해졌다.

EU가 2개월 이상 연기하면 브렉시트는 해를 넘기게 된다.

◇ 존슨, "조기 총선 개최해야"…야당 대응이 변수

일단 브렉시트가 연기될 경우 영국 정치권은 조기 총선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존슨 총리는 이날 법원 표결 전 토론에서 하원이 '계획안'을 부결시킬 경우 법안 자체를 취소하고 조기 총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존슨 총리는 "나는 결코 이 일을 몇 달 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의회가 브렉시트 단행을 거부하고, 내년 1월이나 그 이후로 이를 연기하려 한다면 정부는 이를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될 경우 "매우 유감스럽게도 법안을 취소한 뒤 총선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집권 보수당의 의결권 있는 의석수는 287석으로 법안 통과에 필요한 과반(320석)에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이다. 사실상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10석) 역시 브렉시트에 있어서는 보수당의 반대편에 서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떤 브렉시트 정책도 하원 문턱을 넘기 쉽지 않은 만큼 총선을 통해 과반 의석을 확보, 브렉시트를 포함한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추진한다는 것이 존슨 총리의 복안이다.

변수는 제1야당인 노동당이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2022년 예정된 차기 총선을 앞당겨 하루라도 빨리 집권을 원하고 있다.

다만 코빈 대표는 그동안 자신 역시 조기 총선을 원한다면서도, 브렉시트가 연기돼 '노 딜' 브렉시트 위험이 사라진 뒤에야 이를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EU가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결정한다면 코빈 입장에서도 조기 총선 카드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지는 셈이다.

총선이 열리더라도 존슨 총리의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존슨 총리가 예정대로 31일 브렉시트를 단행한 뒤 총선을 실시할 경우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에측됐다. 나머지 경우에는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이 경우 연립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합종연횡까지 더해지면서 영국 정치권의 혼란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 6월 국민투표 후 3년 반 가까이가 지났지만 브렉시트를 둘러싼 영국의 정치·사회적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런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