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사미승으로 머물러 추억서려… 30여년만에 고향온 듯 감회 새로워
지난달 취임법회때 화환 대신 '지역 쌀' 받아 소외이웃에 전달 '상생'
청소년쉼터등 운영 '함께 행복한 세상' 꿈꿔… 교회찾아 '화합' 행보도
스님들 '청빈·봉사 삶' 펼칠 수 있게 노후대책등 수행환경 보장하고파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소실돼 여러 차례 중건되기는 했지만, 광릉숲에서 이어지는 고즈넉한 풍광과 잘 어우러진 절의 분위기는 천년고찰(969년 창건)의 면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남양주와 포천 등 경기북부 지역에 84개 말사를 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조선 시대 승과시가 치러졌던 곳. 전국의 승려와 신도들을 대상으로 교학 진흥의 중추기관 역할을 해온 교종본찰 봉선사의 새 주지로 임명돼 지난달 25일 취임법회를 연 초격스님은 1987년 바로 이 곳에서 사미계를 받을 만큼 봉선사와 인연이 깊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듯 부처님의 인연에 따라 되돌아 온 것일까, 파릇파릇하던 20대 사미승은 30여 년만에 명실상부 '큰스님'으로 돌아왔다.
휴대전화 컬러링에 가수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 흘러 나오는 사람, 천일기도에 묵언까지 병행하면서 성탄절에는 교회와 성당을 찾아 축하인사를 하는 승려, 삼성을 상대로 문화재 반환을 이끌어내며 '문화재 제자리 찾기'운동의 첫 불을 지폈던 행동가 초격스님을 봉선사 경내에서 만났다.

"봉선사는 젊은 나이에 뛰놀던 곳입니다. 청년의 나이로 큰스님을 시봉했죠. 연꽃이 피고 지는 연못과 그 곳의 자라 한 마리까지 곳곳에 추억이 서려 있습니다. 속세로 치자면, 서울로 공부하러 갔다가 나이 들어 고향으로 돌아온 셈인가요, 감회가 새롭습니다."
30여년만에 돌아온 절은 놀랍게 발전했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사찰 곳곳이 잘 정비되고 신도와 관광객도 크게 늘었지만,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일주문처럼 봉선사는 예나 지금이나 대중들에게 여전히 열려 있는 공간이다.
절에 문화재가 즐비하지만 입장료는 물론, 그 흔한 주차비도 받지 않는다.
신도든 비신도든 점심때 절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무료로 절밥을 먹을 수 있다.

"누구든지 편하게 찾아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힐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종교의 역할이자 존재 이유 아닐까요."
이런 열린 마음은 스님이 각별히 강조하는 '종교간 화합'으로 이어진다.
초격 스님은 관내 기관장과 정치인들을 만날때면 그가 비록 불심이 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특정 종교를 내세우지 마라'고 엄중하게 당부한다.
지도자가 내 종교만 두둔하고 남의 종교를 멀리하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스님이 성탄절에 교회와 성당을 찾아 축하하고, 목사와 신부가 부처님 오신날에 절에 와 함께 차를 마시는 모습을 보여야 신도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사회 화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조계종 제25 교구장으로서의 여러 포부도 '화합'과 맥을 같이 한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스님들에게 기본적인 노후대책을 보장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종교인의 복지를 말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수행 환경이 보장돼 있지 않는데 어떻게 청빈한 마음으로 사회와 신도들에게 봉사할 수 있겠어요. 열심히 수행해 그 결과를 이웃에게 베풀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무슨 건물을 세울지, 어떤 문화 축제를 기획할지도 중요하지만, 선원에서 수행하는 스님들과 학림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에게 복지기금과 장학금·노후 생활비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스님은 지난달 25일 열린 주지 진산식에서 축하 화환 대신 '자비의 쌀'을 모아 20㎏ 들이 1천 포대를 남양주시에 전달했다.
행사 때 쌀을 기부받아 나누는 것이 이젠 그리 드문 풍경도 아니지만, 스님은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해 '기왕이면 북부지역 쌀을 보내달라'고 당부했다.
작지만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배려도 포함됐다. 남양주시를 통해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된 쌀에는 '증 봉선사' 대신 기부자 개개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입장료도 주차 요금도 받지 않고 무료 점심 공양까지 시행한다는 얘기에, 문득 큰 절의 '살림살이'가 팍팍하지 않겠느냐 물었더니 스님은 "마음으로 나누면 마음으로 모아진다"는 답을 내놓았다.
나눔에 대한 '복(福)'은 나눔을 실천한 사람의 몫이고, 누군가 그 복을 가로채지 않는다는 게 일반화 돼야 기부와 나눔이 선순환된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평등공양 차등보시'란 말을 보탰다. 밥은 공평하게 나눠먹고, 베푸는 것은 능력에 따라 차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자기의 나눔이 투명하게 쓰인다는 믿음이 있으면 나눔은 샘솟듯 계속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초격스님은 현등사 주지이던 지난 2006년 삼성문화재단이 소유하고 있던 '현등사 사리구'에 대한 반환운동 과정에서 조계종 실행위원장을 맡았다.
조계종이 법원에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패소한 터였지만 스님은 '낮에는 협박, 밤에는 읍소'를 이어가며 결국 삼성의 대승적 결단을 이끌어냈다.
사리를 '문화재'로 본 삼성과 '성보'라 믿은 스님과의 줄다리기는 힘겨운 노력끝에 삼성이 사리를 영구기증하는 형식으로 매듭지어졌다.
스님에게 휴대전화를 걸면 익숙한 대중가요 '그대 사랑하는 나는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대도~' 노래가 흘러 나온다.
"스님이 남들이 갖는 것을 갖지 못하고, 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고관대작이라고 한들 집을 몇 십 채 씩 갖고 있겠어요. 하지만 스님들은 전국 명산 곳곳의 절이 다 내 집이고, 나물 반찬 한 개만 있어도 진수성찬이니 진정한 자유인이고, 모든 걸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그런 이유에서 일까. 스님은 봉선사를 '가고 싶은 곳', '가면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절'로 만드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봉선사가 남양주 노인복지관을 포함해 어린이집, 청소년쉼터, 가정폭력을 겪는 아이들을 위한 보호소 등을 운영하는 것도 함께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스님의 소망과 무관치 않다.
절에 기도를 하러 간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불주사' 맞은 통증도 잊을 만큼 한달음에 산을 올랐다가 불심에 이끌려 아예 절집 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5학년 어린 아이.
이제 경기북부의 대표 사찰 주지가 된 초격 스님은 절의 문턱을 낮추고 국민들과 종교가 함께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을 불가에서의 또다른 소명으로 여기는 듯 했다.
글/강보한기자 kbh@kyeongin.com 사진/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

■초격 스님은?
▲ 1987년 운경스님 계사로 사미계
▲ 1994년 중앙승가대학 졸업
▲ 1998년 청하 스님 계사로 구족계
▲ 1998~1999년 불교방송 '살며 생각하며' 생방송 진행
▲ 2012년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수료
▲ 2002년~현재 제 13~17대 중앙종회의원
▲ 현등사 주지, 보광사 주지, 한국문화연수원장, 사단법인 해피월드 이사장, 아산 윤정사 회주, 불교신문 사장, 총무원장, 종책특보단장,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