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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간 자전거' 이후 2년만에 단편 10편 선봬
인천·시간·상실 '韓 근대사' 중요 장면들 관통
화도진문화원 근무… '동일방직' 차기작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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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나고 자란 양진채 작가가 최근 소설집 '검은 설탕의 시간'을 내놓았다.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단편 '나스카 라인')로 등단한 양 작가는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 장편 소설 '변사 기담'을 발표했으며, 2017년 스마트 소설집 '달로 간 자전거' 이후 2년 만에 소설집으로 독자와 만났다.

책에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소설 10편이 수록됐다.

작가에게 이번 소설집과 작품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 작가는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집과 장편 소설 중 이번 소설집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밝혔다.

"인천 개항기를 배경으로 무성영화의 변사인 윤기담의 이야기를 다룬 '변사 기담'이 흥미로운 소재로 인해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소설은 아무래도 제 삶과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어요. '변사'와 '작가'는 언어를 부린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것만으로 제 삶을 가져다 붙이긴 어려웠습니다. 10여년 동안 소설을 쓰다 보니 결국 제게서 오래 남는 소설은 제 삶이 깊이 관여되고, 제 기억의 공간과 시간이 들어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소설에 나만의 언어와 이미지로 만들어낸 작품에 애착이 갔고, 이번 책에 실린 소설들은 그런 면에서 제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집에 담긴 10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는 '인천'과 '시간', '상실'을 꼽았다.

"소설 속에 인천의 여러 장소들이 나옵니다. 인천 근대사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인 동일방직 노조 똥물 투척사건의 기억에 붙들린 주인공을 다룬 '애', '플러싱의 숨쉬는 돌'에 나오는 5·3민주항쟁 한 가운데인 시민회관이나 삼촌의 돌을 찾는 북성포구, '부들 사이'에 나오는 수문통의 산부인과, '검은 설탕의 시간'의 인천 내항, '마중'의 자유공원, '허니문 카'의 송도유원지 등이 그렇습니다. 인천에 이런 장소들은 제게 많은 소설적 영감을 주었고, 그런 장소들은 단순히 인천이라는 공간에 한정한다기보다, 그 공간 속 시간을 그리려 했습니다. 또한 그런 공간들은 모두 어떤 식으로든 사라졌고, 변모했습니다. 소설 속 인물이 누군가를 잃어버리거나 잃게 될 상황에 처한 상실감은 이런 인천이라는 공간과 맞닿아 훨씬 풍성해졌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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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클릭아트

현재 인천 동구 화도진문화원 사무국장으로도 일하고 있는 양 작가는 차기작으로 40여년 전 동구 지역을 배경으로 주민들의 삶과 동일방직 여공들의 모습을 다룬 장편 소설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1970년대 수문통 주변 사람들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한 축으로, 다른 한 축은 동일방직으로 대변되는 '노동' 혹은 '노동운동'에 대해 기존의 방식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의 언어로 써보려고 합니다. 인천은 '노동'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도시 역사가 있고, 저도 1980년대를 지나며 여러 노동의 현장에 있기도 했고, '폭력'이 두려워 도망친 과거도 있습니다. 길지 않은 기간이었지만, 그때 자리 잡은 삶의 태도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편을 써야 저도 제 삶에서 훨씬 자유로워지고 또 깊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